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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군 현대화 서두른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중국이 국방 예산을 대폭 증강, 군의 근대화, 무기수준의 고도화, 과학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대외 무기 수출강화에 이어「중국 군」의 부상이 주목되고 있다.
지난 9일 폐막된 전인대(의회)에 인민해방군 대표로 참가한 중국 국방부장 친지웨이(주기 위)는『걸프전이 우리에게 말해 준 것은 현대전이 고도 과학기술에 의한 입체 전·전자전·미사일전·탱크 전을 의미한다는 것』이었다고 전제,『중국군의무기·장비는 선진국 수준에 비해 20년은 뒤져 있다』고 토로했다.
다시 말해 20년 낙후를 만회하여 국가안보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군의 근대화에 집중적 투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진기 위는 지금의 중국 최고 지도자인 덩샤오핑(등소평) 휘하에서 혁명전쟁에 참전했던 노
전사다. 그는 등의 집권이후 80년대 초부터 추진된 군의 근대화 작업을 이끈 주역으로 등의 가장 가까운 군부 인사로 꼽힌다.
중국의 국방비는 천안문 유혈 진압사태가 발생한 이후 증가일로를 걷고 있다.
90년 44억 원(인민폐) 증가된 국방비는 91년에 다시 34억7천만원이 증액된 3백25억 원(62억3천만달러)으로 책정됐다.
증가율로 보면 89년14%, 90년18%, 12년12%로 3년 연속 두 자리 숫자의 상승세를 기록했다.
91년 국방비 12% 증액 분인 7억 달러는 중국이 소련으로부터 새로 도입키로 한 최신예 전투기 수호이(SU) 27기 24대 분의 가격과 같다.
등은 지난 1984년 25년만에 부활시킨 국경 절 퍼레이드를 통해 군비확충 실격을 과시하는 한편 그 이듬해엔「군대건설 지도사상에서 전략적 전환」을 선언, 농민을 주제로 한 인민전쟁 이후의 중국 군을 정규군으로 재편하는 작업을 일관했다.
이와 관련 해 병력 1백만 감축, 계급 제 부활, 공· 해군의 강화, 군수 공업 진흥, 그리고 「신세대」군인의 인민해방군 주체화 등 이 이루어졌다.
79년 중월전쟁에서의 패배라는 쓰라린 교훈을 딛고 추진된 중국군의 근대화 작업성과는 84년의 군사퍼레이드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이 퍼레이드에는 공대함 미사일·함대함 미사일·잠수함 탑재 전략 미사일(SLBM), 홍2호(대공 미사일), 중거리 탄도탄(IRBM) CSS2, 대륙간 탄도탄(ICBM) CSS-4 등신형 무기 외에 원자력 잠수함 취항 공식발표, 정지 위성개발 등 각종 전략 핵 병기를 중심으로 한 신종병기들이 등장했다.
84년 이미「국산화」에 박차를 가했던 중국의 신종무기개발은 실체 실전 배치 외에도 무기수출을 위한 2중 적 목적이 함께 겨냥된 것이었다.
앞으로 도입할 예정인 소련 최신 예 수호이 27기 24대도 실전배치보다 분해하여 국산화에 이용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중국이 91년 국방예산에서 최신예 무기 개발 강화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따라서「국산화」한 무기의 대외 수출에도 목적이 있는 것이다.
중국은 지난 걸프 전쟁에서 이라크의 중국제 실크웜 미사일이 미군에 의해 공중 요격되면서「귀중한 외화벌이의 원천」인 무기수출에 타격을 받았다.
중국 국방과학 기술 공업위원회 부 주임 첸쉐썬이『병기는 곧 상품이다』고 말한 것이 중국의 이같은 입장을 잘 대변하고 있다.
중국은 80년대 초 대규모 군수공장을 증설, 국방관련 공업부문 기관을 제외하고도 그 대표가 관할회사가 몇 개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규모의 중국 북방 공업공사 (NORINCO), 중국 원자력 공업 공사(CAEIC)등 이 등장했으며 이들 공장에서 생산한 항공기·함정·탱크·미사일 등을 외국에 수출해 왔다. 중국은 86년에 이미 세계 제5위의 무기수출국으로 등장했었다.
오늘날의 중국 군은 이미 과거의「인민 해방군」과는 거리가 멀다. 무기 강화와 상품화를 범행하고 있는「중국 인민 해방군」의 두 얼굴은 과거 사회 국의 혁명을 추구하던「대륙 위에 빛나는 붉은 별」의 상징성과 분명히 대치되고 있는 것이다. 등소평 군사노선의 이면에는 혁명전선에 모여들던 전사들의 사기나「수어 관계」로 표현되던 군과 민중간의 끈끈한 연계가 이미 변질된 지 오래기 때문이다. 【홍콩=전택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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