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제 첫 기수들의 사명(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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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30년만에 전국 2백60개 시·군·구의 기초의회가 15일 개원된 것을 환영한다. 오는 6월엔 광역의회선거가 예정되어 있고 노태우 대통령이 임기중 자치단체장선거를 공약함으로써 우리는 바야흐로 지방화시대를 맞게 되었다.
중앙에 집중된 기능과 예산을 지방에 분산,지방의 창의성을 살리고 지역주민의 의지가 자기고장 발전의 주동인이 되도록 하자는 지자제의 취지야말로 우리의 오랜 숙원이었다. 이같은 제도를 십분 활용해 애향심을 애국심으로 연결시키고 배양된 민주역량으로 행정자치를 생활자치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우리의 민주제도는 분명 질적도약을 이루게 될 것이다.
우리는 기초의회 선거가 보여준 보다 깨끗한 선거의 모습이 의사운영에까지 이어지기를 바란다. 정치불신을 위험수위로까지 끌어올린 중앙정치무대의 나쁜 행태들이 지방의회에서는 결코 재연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와 아울러 자치원년의 기수들이 지표로 삼아야할 몇가지 당부를 하고자 한다. 우선 지방의회와 정부는 중앙과의 새로운 관계정립에 겸허하고 합리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 지금까지 중앙정부가 갖고있던 인사·예산·감사권이 대폭 약화된 상황에서 지방정부나 의회가 지역이기주의를 지나치게 앞세운다면 우리는 새로운 비효율성의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예를들어 원전등 위험산업·공해공장·쓰레기매립장등 기피시설을 설치함에 있어 건건이 지역이익과 국가이익이 충돌한다면 자칫 중앙과 지방은 협조·보완의 균형을 잃고말 우려가 있다.
당장 금년·내년이 수급상 고비가 될 전력의 경우 현재 10년이 소요되는 원전을 우리도 미국처럼 20년이상 걸려도 못짓는 사태가 올지 모른다. 그사이 수많은 안면도사태가 벌어지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또 국가재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재정자립도가 충분치 못한 자치단체들이 제각기 무리한 요구를 하고 들어주지 않으면 중앙정부에 책임을 전가하는 병폐가 생길가능성을 상정할 수 있다.
그렇게되면 지역구 업무가 축소된 국회의원들은 사활을 걸고 중앙국가 예산따가기 경쟁을 벌일 것이다. 중앙정부가 얼마나 버틸지 모르지만 우리의 정치풍토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한 긴 안목의 국가건설계획이나 행정은 지역단위의 로비에 의해 훼손당할 우려가 있다.
말할 것도 없이 민주주의란 피차의 이익과 권리를 존중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나와 너,그리고 현재와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책임과 이해를 남과 나누겠다는 각오가 되어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방의 자율·자치를 존중받으려면 지방 역시 중앙정부의 장기계획을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합리적 양보를 할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안되고 국가는 어려워지는 지자제의 역기능이 새로운 쟁점이 되는 사태가 올 것이다.
지자제가 민주주의를 배우고 실천하는 도장이 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의 정치행태중 나쁜점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전통을 수립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특히 오늘 출범하는 기초의회 의원들은 무보수 명예직이다. 불과 한달전 「내고장 일꾼」임을 앞세워 희생과 봉사를 하겠다고 호소할때의 각오와 다짐을 잃지 않는 항심을 견지해 주기바란다.
이런 마음으로 첫 지방의회의 관행과 역할을 수행해야만 직의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초대 기초의회는 우리 자치사에 민주발전의 거대한 족적을 남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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