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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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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현대자동차가 29일 직원들에게 지급한 연말성과금을 놓고 노사가 반목하고 있다. 연말성과금 지급은 노사가 8월 체결한 임금협약에 따른 것으로 한 사람이 한 달 치의 통상임금(평균 200만원)을 받았다. 협약에는 자동차 생산목표치(올해 164만7000대)를 넘기면 한 달치 임금의 150%를, 목표치에 미달하더라도 95%를 넘어서면 100%를 주기로 명시돼 있다. 회사 측은 올해 생산량이 162만2000대로 목표치의 98.5%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노조는 "회사가 노조 집행부를 흔들기 위해 15년째 지켜오던 관행을 하루아침에 깼다"며 반발하고 있다. 노조가 이렇게 나오는 데는 그만한 근거가 있다. 회사가 연말성과금을 주기 시작한 1991년 이래 거의 매년 생산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는데도 성과금은 한 푼도 차질 없이 지급했다. 특히 외환위기 사태 때 주지 못한 98년도분 성과금은 2001년에 이자까지 붙여 지급하기도 했다. 성과와 상관없이 관행적으로 성과금을 준 것이다.

이런 관례를 깨고 회사 측은 올해 '협약대로'를 강조했다. 현대차는 28일 담화문을 통해 "국민의 지탄을 더 이상 감내할 수 없다. 무책임한 파업으로 생산 목표 달성에 실패한 노조도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한다"며 노조를 압박했다. 연초에 세운 생산 목표를 12만 대(6.8%)나 축소조정하는 등 150%의 성과금을 지급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노조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등 회사와 무관한 12차례의 정치파업으로 2만1000대의 생산 차질을 빚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조는 "회사가 성과금 50%를 아끼려다 훨씬 심한 타격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며 "(회사가 굴복할 때까지) 특근.잔업을 전면 거부하는 등 총력투쟁에 나서겠다"고 공언했다. 이미 28일 2시간 잔업 거부와 항의집회를 벌였다.

80~90년대 강성 노조의 상징인 현대중공업은 파업으로 노조원의 임금이 줄어든 만큼 회사가 성과금으로 보전해 줘 노조가 부담 없이 파업했다고 한다. 그러나 회사가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면서 노사관계를 안정적으로 정착시켰다. 원칙을 내세운 현대차가 '잘못된 관행'을 떨쳐 버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기원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