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유명산 독림서원 박성우씨|"나무와 산 22년…친구 같아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나무는 사람과 같다.
사람처럼 숨을 쉬기도 하고 아프면 병도 난다. 저마다 자기 터를 잡고 사람보다 긴 수명동안 온갖 풍상을 겪는다.
5일은 식목일.
매년 이맘때가 되면 늘 맞이하는 나무들의「생일날」인 셈이지만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가일리에서 유명산을 지키는 박성우씨(54)는 늘어나는 입산 객으로 사람과 같은 나무에 상처라도 날까봐 오히려 걱정이 앞선다.
행락객이 무심코 버린 담배꽁초에 의한 화재, 갖가지 병충해가 올해에도 없기를 기원하고 있다.
『제가 담당하고 있는 이곳 유명산은 자연휴양림 지역으로 관광 겸 등산코스로 전국 어느 곳 못지 않은 수려한 곳입니다. 행락철이 닥쳤습니다만 관광객들의 나무에 대한 무관심과 부주의가 이제는 고쳐져야 할 때입니다.』
박씨는 현재 산림청 중부영림서 춘천 관리소 청평 출장소 가일리 분소에서 근무하는 기능직 공무원이다,
69년 일용직으로 입사해 지금까지 22년 동안 유명산 일대 나무를 돌보며 살아왔다. 유명산의 나무들에는「아버지」며「친구」며 또「의사」다.
거의 4반세기 동안 나무를 심고 가꾸고 함께 뒹굴면서 자식을 키우는 심정으로 한 그루 한 그루에 정성을 심어왔다.
박씨의 작은 왕국인 가일리·운곡리 등 가평군 5개 마을에 걸쳐있는 유명산 일대에는 박씨가 가꾼 잡나무와 낙엽송이 가득차 있다.
박씨는 이곳 약 2천1백여ha의 국유림 살림을 꾸려오면서 지금까지 1천여ha의 면적에 3백여만 그루의 묘목을 심었고 이 면적을 합쳐 1천5백여ha 숲을 가꿔왔다.
『결코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저보다 더 넓은 산림의 나무를 가꾸는 사람도 많지요. 저는 그저 나무가 좋아 정성 들여 일했을 뿐입니다.』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 아닌데도 자신이 해온 일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겸손해한다.
박씨의 고향은 경남 남해군 삼동면 동천리. 바다와 가까운 곳에서 태어나 남해 수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 군대 3년을 마치고 69년 산림청에 들어가기까지 농사를 짓기도 했다.
수산고등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한때 바다 진출을 꿈꾸기도 했던 박씨가 나무와 인연을 맺게된 동기는 지극히 단순하다.
군복무 후 농사만으로는 생계가 어려워 호구지책으로 월1만여원의 봉급을 받을 수 있는 산림청 일용직으로 취직했다.
청평 출장소에서 3년 근무를 마친 뒤 오지인 가일리 분소로 들어온 것이 72년.
교통편도 시원찮은데다 자녀교육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박씨는 두 아들을 무난히 고등교육까지 시킨 뒤 지금은 부인 강신자씨(52)와 단둘이 10평도 채 안 되는 관사에서 또 다른「신혼」을 맛보고 있다.
박씨가 나무와 인연을 맺게된 것은 생계의 방편이었지만 그후 22년은 단순한 호구지책만일 수 없었다.
86년4월23일 오후1시쯤.
유명산 기슭에서 약초꾼들이 무심코 버린 담배꽁초가 산불로 번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박씨는 65가구가 모여 사는 가일리 일대 주민들과 공무원 50여명을 이끌고 진화작업에 나셨다. 동원된 소화도구는 괭이·삽·낫·갈퀴 등이 고작.
그러나 박씨의 애착과 주민들의 협조로 3천여평 3천 그루의 참나무가 소실되는 것으로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비록 피해가 적다하더라도 열 손가락 중 깨물면 어느 손가락하나 안 아픈게 있나요.』
박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못내 아쉬워했다.
지난해 8월3일 또 한번 큰일이 났다. 여느 때처럼 나무를 돌보기 위해 집을 나서다 부근 비탈길에서 내려오는 관광버스 바퀴에 깔려 넉 달 동안 입원하는 중상을 입었다.
골반이 부서지고 장까지 파열돼 다시는 나무를 가까이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하게 됐다.
퇴원 후 쇠붙이를 엉덩이 속에 끼워 넣는 수술 두 차례, 끊임없는 물리치료….
죽지 않으면 병신이 될 거라는 주변의 수군거림에도 아랑곳없이 오기와 집념의 투병생활 끝에 박씨는 올 1월부터 다시 나무를 돌볼 수 있게 됐다.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아직도 약간 거동이 불편하지만 박씨의 올해 업무는 더욱 벅차졌다.
조림한 나무가 잘 자라도록 돌보는 일, 휴일만 되면 찾아오는 등산객들에게 취사금지 등 계도, 리번 달고 전단을 뿌리면서 나무사람 호소 캠페인….
더욱이 3월1일부터 5월31일까지의「봄철 산불 조심 기간」은 일요일도 없이 눈코 뜰 새 없다.
1년 중 가장 산불 나기 쉬운 기간인데다 식수 기간이기도 해 박씨는 몸이 둘, 셋이라도 모자랄 만큼 바빠진다.
『나무를 심을 때는 먼저 나무 심을 곳의 표면에 있는 검불을 긁어내고 깊게 판 다음 다시 부드러운 흙을 넣으면서 묘목을 깊게 묻습니다. 그리고 나서 묘목을 조금 들어올려 공기가 안 통하도록 정성껏 밟은 뒤 다시 습기가 증발되지 않게 검불을 덮어줍니다.』
22년간 체험을 통해 터득한 나무심기 요령을 박씨는 강조한다.
그러나 박씨는 자식을 낳은 정보다 기르는 정이 앞서듯이 나무를 심는 것보다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예컨대 잣나무 묘목 한 그루를 심었다고 칩시다. 심은 뒤 4년간은 풀 깎기 작업 7년이 지나면 뻗친 가지를 쳐내는「치수 가꾸기」, 15년이 지나면 병든 고사목, 가지가 너무 뻗쳐 옆 나무에 피해주는 경쟁 목을 베어내는「예비간벌」, 20년 뒤「주간벌」등 그루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노력이 듭니다.』
이렇게 엄청난 공이 들지만 이 같은 일을 같이 할 수 있는 노동력이 시골에 없는게 가장 안타깝다.
일할 수 있는 청장년들은 모두 도회지로 빠져나갔고 인건비도 올라 일당 3만원 이상을 주어야 한다. 일손을 못 구해 박씨 내외 둘이서 넓은 산을 돌보기가 갈수록 벅차다.
『그래도 정년 퇴직하는 날까지 혼자서라도 나무와 살겁니다. 소망이 있다면 퇴직 후 조그마한 사유림을 경영하는 것인데 땅값이 워낙 올라 될 수 있을는지….』
스스로 일구고 가꾼 유명산 잣나무·낙엽송을 가리키는 박씨의 손은 마치 나뭇가지처럼 굵고 거칠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자그마한 체구는 거친 세파에도 끄덕 없이 버티는 노송인양 보였다. <정선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