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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7가] 한국 에이전트의 초상

중앙일보

입력

영화나 드라마로 치면 메이저리그 오프 시즌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구단 단장과 선수 에이전트입니다. 한 겨울 이들의 만남에서부터 헤어짐은 한 편 영화의 줄거리와 어슷비슷합니다. 팽팽한 긴장과 갈등 줄다리기가 있고 파국이 있는가 하면 해피 엔딩도 있습니다.

그런데 해마다 느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 에이전트들의 활약상입니다. 스캇 보라스 같은 수퍼스타는 아닐지라도 조연급 정도는 있었으면 하는데 언감생심입니다. 엑스트라급도 없습니다.

물론 이는 선수와 뗄래야 뗄 수가 없는 문제입니다. 99년 최희섭 이후 씨가 말라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선수 자원의 고갈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선수들의 부진과 미국 거물 에이전트로의 줄줄이 이탈 등등.

하지만 아직도 브로커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에이전트의 후진성도 결코 작지않은 원인으로 생각됩니다.

최근 최희섭의 에이전트가 직접 언론에 발표한 탬파베이와의 황당한(?) 계약은 그 저급한 현실을 에누리없이 보여줍니다.

그에 따르면 최희섭은 2년간 총 195만 달러에 스플릿 계약을 했다고 합니다. 스플릿 계약이란 최희섭이 메이저리그에 머물면 전액을 다 받고 마이너리그에 떨어지면 대폭 삭감된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같은 최희섭의 계약은 대전제가 있어 큰 의미가 없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휴지 조각이나 다름없습니다.

대전제란 바로 논-로스터 인바이티(Non-roster invitee)라는 것입니다. 이는 말 그대로 40인 로스터에 포함시키지 않으면서 스프링캠프에 초청하는 선수를 이릅니다. 곧 스프링캠프에 들어와서 시범경기를 통해 테스트를 치른 연후에야 구단이 정식 계약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것입니다.

부상 전력이 있는 선수 하루가 다른 노장 선수 등 검증 또는 확인 절차가 반드시 필요한 선수들에게 구단이 요구하는 절차에 불과합니다. 실질적으로 계약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미국 언론에서도 계약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개런티가 되지 않아 계약으로써 큰 의미가 없는 탓입니다. 오프시즌에서 구단을 못찾은 모든 선수가 논 로스터 인바이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최희섭의 계약은 진실이 아닌 과장이고 잘못된 포장입니다.

진실이 아니고 과장이라고 한 것은 '손으로 하늘을 가리고' '눈 가리고 아웅한' 측면이 강한 때문입니다.

잘못된 포장은 에이전트로서 번지수를 제대로 찾지 못했기에 그렇습니다. 선수에 대한 포장은 매스컴을 상대로 할 게 아니라 구단을 겨눠야 하는 것입니다. 보라스가 겨울만 되면 열 일 제쳐놓고 NASA(항공우주국)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동원해서 선수별로 책 한권은 족히 되고도 남을 파일을 내놓겠습니까.

기왕 논로스터 인바이티라면 스프링캠프까지는 아직 여러달이나 남았는데 뭐 대단한 건수라도 올렸다고 그렇게 계약을 서둘렀는지요.

오히려 실낱같이 남아 있는 가능성을 찾기 위한 수고를 일찌감치 포기한 처사는 아닐까요. 계약이랍시고 발표하면서 오히려 에이전트 자신을 포장하려는 의도가 더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속된 말로 돈이 되려는 순간 한국 에이전트의 품을 떠나려는 선수들의 행태를 '배신 때리기'라고만 몰아붙일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USA 중앙일보 구자겸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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