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 의회 선거법 문제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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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실로 30년만에 실시된 지자제 선거 과정을 지켜보면서 몇가지 감회와 소감이 없을 수 없다.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이 지자제란 바로 죽어 있던 우리 정치가 되살아나는 국민 정치의 복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느낀 첫번째 소감은 30년만에 부활되는 정치 축제치고는 너무도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는 점이다. 냉철한 이성적 판단과 합리적 선거 행위로 이어지는 차원 높은 정치 문화의 발전을 예고하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만일 그런 것과는 달리 무관심으로부터 비롯된 현상이라면 그것은 결코 그냥 지나칠 문제가 아니다.
이번 선거가 이처럼 시종 차가운 분위기 속에서 이뤄진 데는 우선 선거법에도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당의 기초 의회 관여를 금지하면서도 실제로는 정당의 영향력 행사를 가능케 했다든지, 시민 단체의 자발적 참여를 사실상 제약시켰다는 점등은 결국 이번 선거를 그토록 가라앉도록 만든 가장 큰 원인이었다.
둘째는 이번 선거 역시 우리 정치의 고질 같은 것을 그대로 보여줬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번 선거가 마치 앞으로 있을 광역의회·국회의원선거, 대통령선거를 위한 지방 조직의 사전 체계화 같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선출하려는 기초의회 의원은 직업 정치인이기보다는 순박한 내 이웃이기를 바라며, 그래서 늘 우리와 함께 어울려 때로는 잡담도하고 세상을 조금은 원망도하면서 자식 공부 걱정이라든가, 동네 돌아가는 형편을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면 충분한 것이다.
돈 많고 고명한 인사가 아닌 동네 어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이웃이기만을 바랐을 뿐이다.
셋째로 중앙선관위라는 기구가 참으로 힘이 있는 기관이구나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는 점이다. 이처럼 막강한 기관이 왜 지금까지 국회의원 선거나 대통령선거에서는 그처럼 맥을 못 추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부디 광역의회 선거부터라도 엄정 중립을 지키면서 명실공히 「법」에 따라 공명을 실천하는데 진력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입후보자의 사퇴와 자격 시비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 정도의 일이라면 그동안 제대로 해보지 못했던 지방 자치를 되살리기 위한 대가쯤으로 치부해도 좋다.
그리하여 지자제만 되면 당장 민주주의가 완성될 것처럼 여겨온 그동안의 주장과 논리가 얼마나 사실과 근접된 것인지에 대해서도 직접 경험으로 확인해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번 선거 결과를 놓고 여가 이겼다, 야가 이겼다는 식의 치졸한 작태는 벌이지 말았어야 했다.
우리의 기대만큼 허심탄회하고 정직한 대표들이 선출된게 아니고 보면 이번 광역의회 선거에서도 또 다른 실망과 좌절감이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여전히 차가운 선거가 몰고 올 정치적 파장을 경계하면서 우리 마을에서 출마한 사람들의 면면에 깊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이 땅에서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조그마한 마음의 표시라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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