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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없이 할아버지·할머니와 사는 아이들 10년 사이 65%나 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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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성탄절인 25일 울산시 중구 우정동에 있는 동네 경로당에서 TV를 보던 예원(6.가명)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TV는 엄마가 가출한 뒤 할머니와 사는 아이를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예원이와 똑같은 처지의 아이다.

예원이의 할머니(68)는 "니들 버리고 간 에미가 뭐가 보고 싶어"하고 탄식했다. 예원이는 "그냥, 저 애가 불쌍해서…"라며 시무룩해진다. 할머니는 "이런 날은 지 에미를 더 보고 싶어하는 것 같다"며 "에미 정을 떼려고 야단치지만 애들이 무슨 죄가 있노"라며 목이 메었다.

여섯 살짜리 쌍둥이 남매인 예원이와 예민이의 집은 재개발촌 한복판의 경로당이다. 지난 1월까지 예원이는 할아버지(78).할머니(68).삼촌(35)과 함께 보증금 200만원에 월 20만원짜리 단칸 월세방에서 살았다. 하지만 재개발로 집이 헐리면서 동네에서 제일 늦게 헐릴 예정인 경로당으로 옮겨왔다.

예원이는 아빠 얼굴도 모른다. 빚더미에 시달리던 아버지는 예원이가 갓난아이일 때 가출했다. 엄마도 2003년 말 집을 떠났다.

가족의 유일한 수입원은 삼촌이 막노동으로 벌어오는 월 80만원이 전부다. 할아버지.할머니는 몸이 아파 일을 못한다. 하지만 할아버지.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제외됐다. 자식이 일을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할머니는 "김이라도 밥상에 올라가는 날이면 진수성찬"이라며 "저녁이면 다섯 식구가 한 방에 모여 체온을 의지하며 잠을 잔다"고 말했다. 정부는 예원이 남매에게 1인당 월 35만원 정도의 지원금을 주고 있다. 삼촌 수입과 정부 지원금까지 합쳐 150만원으로 다섯 가족이 산다. 그러나 내년 봄 경로당이 헐리면 예원이네는 갈 곳이 없다.

예원이네처럼 어린 아이들이 할아버지.할머니와 함께 사는 조부모 가정이 급증하고 있다.

이혼율은 늘고 중산층이 몰락하면서다. 인구 1000명당 이혼건수를 나타내는 조이혼율은 1995년 1.5건에서 지난해 2.6건으로 늘었다. 도시 근로자가구의 가처분소득이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절대빈곤층 비율 역시 96년 2.5%였으나 지난해는 7%로 급증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1995년 조부모 가정은 3만5194가구에 12만 명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5만8101가구에 19만6076명으로 늘었다. 10년 만에 조부모 가정 가구수가 65% 정도 증가한 것이다.

이들은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 경기도청이 8월 조부모 가정 3113가구(8591명)를 조사해보니 3분의 2가량의 월소득이 국가보조금을 포함해 50만원 이하였다. 4인 가족 기준 월 최저생계비(117만원)의 절반에 못 미친다.

가난은 조부모 가정이 형성되는 원인이자 결과다. 조부모 가정이 발생하는 건 부모의 이혼(43%), 아이 부모의 경제난(16.8%), 실직(6%)순이다. 김혜선 강원대 교수는 "이혼도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인 경우가 많다"며 "조부모가 중산층이었어도 노후자금을 손자들 양육비로 쓰다 보면 곧 빈곤층으로 전락한다"고 말했다. 조부모 가정 가운데 정부의 가정위탁 지원금을 받는 건 지난해 말 전체 조부모 가정의 9% 정도인 5200여 가구다. 아동 1인당 월평균 42만원 정도가 지원된다.

이봉주 서울대 교수는 "(보육원 등)시설에서 양육되는 아동에게는 시설 운영비.인건비 등을 합쳐 1인당 100만원 정도가 지원된다"며 "정부가 할 일을 조부모가 대신하고 있는데 지원은 너무 부족하다"고 말했다.

정철근.김영훈 기자

◆ 조부모 가정=손자.손녀가 부모 없이 (외)할아버지.(외)할머니와 함께 사는 가정을 말한다. 조손(祖孫)가정이라고도 부른다. 조부모 가정은 손자.손녀 부모의 이혼.가출.사망.빈곤 때문에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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