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 논쟁(정치와 돈:5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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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죽기 아니면 살기”비용 크기에 반비례 소선거구 반대/유권자 느는만큼 씀씀이도 늘게 마련 「중·대」회의론/비용보다 정략 갈려 혼전중
이번 시·군·구의원 선거가 돈 적게 드는 선거의 선례를 남김에 따라 내년초의 국회의원선거도 이런 양상을 유지해야 한다는게 정치권의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정치권에선 「돈 덜드는 선거」와 관련지어 여러가지 방안이 제기되는 속에서 1지역 1인 뽑는 현행 「소선거구제」와 「중·대선거구제」(1지역 2인 또는 3∼5인)중 어떤 것이 돈안드는지를 놓고 민자당 내부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경험과 논리를 섞어 의견이 맞서고 있으나 소선거구의 비용이 더 비싸다는게 우세하다. 면적과 인구를 따져보면 2∼3배 많은 「중·대」가 당연히 돈이 많이 들어갈텐데 실제 뛰어보면 이런 산술적 계산이 소용없다는 주장이다.
한군데서 1명 뽑는 「죽고 살기의 분위기」속의 돈 씀씀이는 2명 이상 선출하는 여유속에서의 돈쓰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11,12대때 1지역 2인의 중선거구제와 13대 「소」를 경험한 민자당 3역출신 중진의원은 『13대때 선거구 크기와 유권자수가 줄어들어 비용도 늘리지 않았다가 막판에 돈 끌어 쓰느라 애를 먹었다』며 『유권자와 선거운동원에 투입되는 선거단가가 2∼3배 이상 뛰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당선거제도 개선소위 위원장인 이자헌 의원은 선거공간 축소에 따른 유권자와 후보간의 「밀착도」와 「접촉빈번도」가 증가하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경북의 한 민자당 중진의원은 『3개 시·군이 하나의 선거구였을때는 「중점주의 전략」을 택해 특정지역 몇곳만 공략했으나 선거구가 줄어들어 유권자가 있는 모든 곳을 챙겨야 하니 비용이 올라갈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지난번 선거전 초반 ▲홍보팀에 5천만원 ▲기획팀에 2천만원 ▲현장관리조에 1억5천만원을 배정,운영했는데 분위기과열로 현장관리조에서 아우성쳐 자신의 선거예산을 뜯어 고쳤다는 것. 금세 분위기가 달아오르니까 선거운동원,유세장 박수부대에서 과열에 따른 「일당인상」을 요구하고 나오고 시간이 흐를수록 운동원과 박수부대를 늘릴 수 밖에 없어 자금운용 계획에 큰 차질을 빚었다는 것.
후보들간에 「돈 적게 쓰는 협정」이 지켜질 수 없는 것도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민자당의 모의원은 『85년 12대때는 2등까지 당선되니까 후보끼리 유권자 인사치레 규모에 대해서도 서로 의견을 교환할 정도였는데 사생결단식인 13대때는 돈씀씀이 경쟁이 가열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심지어 한쪽에서 맥주로 유권자들을 대접한다니까 소주로 접대하던 다른 쪽도 자연히 맥주로 바꿀 정도로 유권자들에게 정력을 쏟아야했다』고 회고했다.
평민당의 서울출신 K의원도 『소선거구제는 관심있는 유권자들이라면 후보의 정성수준을 금방 가늠할 수 있다』며 『어느 후보가 돈 잘쓰고,못쓰고가 금방 티가 나는데 과열·혼탁은 당연할 수 밖에 없다』고 동조했다.
선거특수의 경기면에서 볼때도 「소」때가 돈이 많이 풀리고 업체도 호황인 것을 보면 「소」의 비용이 높은게 분명하다는 주장이다. 민자당의 경기출신 L의원은 『수건·비누·화장품 등 선거용품이 가격급등이나 품귀현상,그리고 노동력이 선거운동원으로 투입돼 오는 인력난이 「소」때가 훨씬 심했다』고 지적한다.
물론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지역이 넓으니까 「중·대」가 당연히 투자비용이 많을 수 밖에 없으며 심리적으로도 신경쓸데가 많은데 「소」보다 돈이 적게 들어갈 리가 없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민자당의원은 『돈이 적게 들었다는 11,12대는 5공시절의 나눠먹기 선거분위기 탓이며 이는 비정상적인 경험』이라고 주장하고 『지난 13대는 대통령선거의 과열후유증과 지역감정 때문에 선거단가가 올랐던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서울에서 쪼개진 구를 다시 1개 선거구로해 2∼3명씩 뽑는다치면 넓어진 선거구의 늘어난 유권자를 안챙길 후보가 없음을 생각하면 그만큼 선거비용이 인상되게 마련』이라고 주장.
김영삼 민자당 대표도 『소선거구제의 골격을 바꾸지 않겠다』며 그 이유의 하나로 「중·대」가 비용이 과다함을 들었다.
지난 16일 민자당 정치풍토 개선토론회에서 이범준 성신여대 교수(박정수 민자의원 부인)는 자신의 간접경험을 들어 『한국사람의 성격으로 보아 선거지역이 늘어나면 다 돌려는 욕심이 생기고 그러면 선거비용도 더 든다』고 주장했다.
양측의 의견은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으나 「돈 안쓰는 선거」는 이런 선거구제에서 오는 차이보다 선거풍토에 더 영향을 받는 것이라는데 양측 모두 인정하고 있다.
부산의 모의원은 『「소」든 「중·대」든 후보중 어느 누구가 「과열」로 치달으면 나머지 후보는 덩달아 따라가지 않고는 못배기는게 우리 선거풍토』라며 『이에 따른 선거비용의 상호 증폭을 막는 것은 「공명」만이 확실한 대책』이라고 했다.
그러나 내년 총선을 현행 「소」로 치를지,또는 「중·대」로 바꿀지의 문제에 있어 돈씀씀이 논쟁이 큰 변수는 아니다.
「중·대」로 바꿀 경우 현역의원과 과반수 정도가 공천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아 민자·평민의 현 체제에 변동이 생길 수 있고 또한 이 문제는 내각제 개헌과도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이어서 어떻게 보면 선거비용 과다논쟁은 배경에 깔린 그런 정략적 고려를 감추는 구실에 불과할 따름이다.<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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