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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희망의 붕어빵 굽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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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노숙자 생활을 접고 3년째 붕어빵을 굽고 있는 최현국씨. 조그마한 가게를 마련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사는 것이 목표다. 양영석 인턴기자

"새해 소망요? 환갑이 넘은 나이에 내 힘으로 벌어먹고 살면 다행이지요. 허허…."

22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공덕동 서울 서부지법원 뒷담 골목의 한 손수레. 최현국(가명.64)씨는 익숙한 솜씨로 팥으로 속을 채운 뒤 붕어빵 틀을 뒤집는다.

그는 매일 오전 8시30분이면 이곳으로 출근해 오후 5시까지 손님을 맞는다. 코흘리개 꼬마들이 주로 찾는 여느 붕어빵 노점상과 달리 최씨의 고객은 법원을 찾는 민원인이 대부분이다. 쌀쌀한 날이면 붕어빵 네 개를 1000원에 팔아 하루 7만~8만원의 매상을 올리기도 하지만 보통은 5만원 벌이가 쉽지 않다. 재판이 끝나면 손님이 끊겨 일찌감치 문을 닫아야 하고 민원인이 없는 주말이나 공휴일은 장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수입이 들쭉날쭉하다.

그러나 한 평 남짓한 포장마차는 한때 세상을 등지고 살았던 최씨에게 열려 있는 마지막 희망의 비상구다. 4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잘나가는' 사장님이었다. 인천과 서울을 오가며 화물을 운반하는 지입차주 40여 명에게 일감을 연결해 주면서 어렵지 않은 생활을 했다.

그러나 2003년 초 '앞으로 중국이 뜬다'는 말만 믿고 만주로 진출을 시도한 게 화근이었다. 중도금을 받은 업자가 잠적하면서 5억원을 사기당해 갖고 있던 화물차 두 대와 집까지 날렸다. 함께 일하던 지입차주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최씨는 빚 독촉에 시달리다 못해 부인과 아들을 고향인 대구로 보내고 서울에 홀로 남았다.

노숙자로 전락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지하철 역사(驛舍)를 안방 삼아 잠을 청하고, 시간이 흘러가는지도 모른 채 아무런 의미 없는 생활을 하면서 6개월 동안 방황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구세군이 운영하는 노숙인 쉼터인 '충정로 사랑방'을 찾았다. "사랑방에 들어온 뒤에도 밤에 잠이 안 왔어요. 왜 이렇게 사는가 싶어 하루에도 몇 번씩 자살을 생각했습니다."

하룻밤에 몇 백만원어치씩 술을 살 정도로 손이 컸던 그로서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충정로 사랑방의 김욱 간사는 "과거는 다 잊고 이제 현실을 직시하라"고 충고했다. 최씨는 석 달 만에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일을 해야 할 것 같았어요. 사업도 망했고 돈도 없지만, 앞으로 살 날이 길다는 생각이 들었죠."

2004년 2월 마포구청이 마련해 준 공공근로사업장에 나가 거리청소를 하면서 시작했다. 좋아하던 술도 끊으며 한 달에 보름 정도 일해 6개월 만에 300만원을 모았다. 그해 가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후원으로 40여만원짜리 붕어빵 기계를 마련해 이듬해 봄까지 장사를 했다.

지난해 여름에는 서울시가 마련한 노숙자 일자리 갖기 사업장인 상암동 월드컵공원에서 청소를 하거나 중부수도사업소의 건설현장에서 벽돌을 날랐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모은 돈이 1000여만원. 아직까지 1억원 넘는 빚이 남아 있고 3년째 사랑방에서 무료로 숙식을 해결하는 곤궁한 처지이지만 그에게는 희망이 있다.

최씨는 "세상을 원망하는 마음도 이제 모두 없어졌다"며 "지금까지 많은 분에게 신세 지고 살았지만 앞으로는 내 힘으로 살 수 있도록 작은 가게를 마련할 때까지 열심히 일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가끔씩 전화로 안부를 확인하는 가족과 재회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붕어빵이 아니라 희망을 굽고 있는 것이다.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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