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가게] 韓·日커플 "월드컵 감동 사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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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4강 영광을 되새기며 어려운 이웃도 돕고 싶어 우리 가족의 보물을 내놓았습니다."

8일과 9일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린 '지상 최대의 벼룩시장'에서 '2002 월드컵 가족'이란 부스가 단연 눈길을 끌었다.

월드컵과 관련한 귀한 물건이 빼곡히 진열된 가게의 주인은 변규창(卞奎昌.38.무역업).다나베 가오리(田邊薰.28) 부부와 지난해 2월 태어난 아들 보명군. 가게 물건은 8일 현장 판매와 9일 경매를 통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한국이 월드컵 4강에 진출하던 날 발행된 중앙일보 호외(장당 1천원), 거스 히딩크 감독의 자필 사인이 든 자서전(6만5천원), 프랑스 축구팀 주장이던 마르셀 드사이의 사인이 든 축구화(33만원), 卞씨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수집한 각 지역 월드컵 포스터 12장(13만원)…. 卞씨 부부는 지난해 월드컵 자원봉사자 3만여명 가운데 유일한 부부 봉사자. 卞씨는 1998년 서울로 관광온 다나베씨에게 첫눈에 반해 2000년 결혼에 성공했다.

이날 내놓은 물건들은 축구팬인 卞씨가 월드컵 메인프레스센터(MPC)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어렵게 모은 보물들이다. 프랑스 대표팀 선수들의 사인과 축구화는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 당시부터 프랑스 팀의 경기가 있는 대구.울산.서울.요코하마까지 건너가 응원한 덕분에 손에 넣었다. 4강 진출을 알리는 중앙일보 호외 1백여장도 지난해 6월 22일 온국민이 열광하는 거리에서 버려지는 것을 '역사에 남을 기록물'이란 생각에 정성껏 모아 보관해왔다.

卞씨는 어렵게 모아온 '보물'을 벼룩시장에 내놓은 이유를 묻자 "다나베가 좋은 물건은 좋은 일에 써야 한다고 우겨서"라며 부인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다나베씨가 태풍에 집을 잃은 할머니의 딱한 사연을 TV에서 본 뒤 "우리도 무언가 도울 수 없을까"라고 말을 꺼낸 것이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중앙일보를 통해 벼룩시장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은 부부는 일주일간 밤을 새우며 준비를 했다. 호외는 한장 한장 깨끗한 비닐에 넣어 정리하고 기념품들은 정성껏 닦아 새 것처럼 손질했다. 차가운 비바람 속에서 하루 종일 "골라보세요"를 외친 卞씨 부부는 "이번 수익금은 모두 강원도 수재민에게 전달하겠다"고 환하게 웃었다.

신은진 기자<nadie@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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