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김석환특파원 현지취재/흔들리는 소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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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정불안” 투자국들 고민/일관성 없는 정책 루머만발/누가 실권자냐 촉각… 로비전 치열
고르바초프정권의 안정과 진로는 소련 자신 뿐 아니라 외국,기업들에도 비상한 관심대상이 되고 있다.
모스크바에 진출해있는 각국 대사관,기업 등은 따라서 소 정치지도부의 권력변동과 관련한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대한무역진흥공사 모스크바 본부장인 성정현씨는 소 진출 한국기업의 고민을 이렇게 말했다. 『서방기업들 전체가 소련의 장래에 대한 불안으로 과감한 투자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연방정부와 공화국정부가 대립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분야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의 고민이 특히 크다.』 성본부장등 모스크바의 한국상사 관계자들은 『소련과 같은 정정이 불안정한 시장에서의 장사는 결국 인맥이 좌우한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판단에 따라 한국기업들은 소련정부의 내각개편에서부터 기타 관련 정보수집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며 자신들과 연관을 맺고 있는 인물이 주요한 포스트에 진출하면 축하화환이나 축전 등을 경쟁사보다 빨리 보내려고 싸우듯 서두른다.
이들은 또한 각 분야의 주요한 인물들을 경쟁사 몰래 접촉,한국에 초청해 대소 경협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가계약이라도 맺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같은 과정에서 갖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한국기업들은 정부수집비와 에이전트 관리비로 1년에 십여만달러 이상씩을 지불하고 있다.
기업들의 대소 내부정보에 대한 이와 같은 관심은 정보의 부익부,빈익빈 현상과 막대한 비용낭비를 초래해 이를 예방하는 방안으로 「대소 정보풀」 제도확립에 관한 논의도 수차례 시도됐으나 경쟁사간 이해의 대립으로 유야무야됐다.
지난 2월초 소연방 감찰당국은 소련의 대표적 기업인인 아르템 타라소프에 대해 전격적인 감사를 실시했다. 이는 기업들의 대소 내부정보 입수에 대한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킨 사건이었다.
옐친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의장의 강력한 지지자이자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의원이며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실시 후 성공한 상징적 기업인인 타라소프에 대한 감사는 두가지 점에서 서방기업들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하나는 소연방 감찰당국의 불시압수수색에 옐친등 러시아공화국 지도부가 전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모든 일련장부에 대한 압수수색에서부터 금고에 대한 조사까지 이잡듯이 이루어진 당국의 철저한 조사과정이었다.
이 사건후 서방기업들은 러시아공화국과의 단독적인 접촉을 자제하고 있으며 작년말부터 이루어진 소연방당국의 정책변화를 재점검하면서 몸을 사리고 있다.
특히 한국기업의 경우 대소차관 30억달러와 관련,연방정부와 돈독한 관계를 맺어온 어떤 기업은 혜택을 받은 반면 지방공화국정부와 연방정부 모두를 접촉했던 다른 기업은 참패를 당했다는 소문이 돌면서부터 더욱 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만난 블라디미르 리셴코(러시아공화당 총재)는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옐친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의장 두 사람이 협력해 소련시장의 이러한 불안요인을 해소시켜야 할텐데 오히려 대립과 반목이 커져만 가고 있어 걱정』이라고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한국기업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하루하루 근원을 알 수 없는 엄청난 뉴스와 루머속에 살고 있다. 국가계획위원회·국가중앙조달위원회 등 소 중앙정부기관의 폐지문제가 논의된지도 6개월이 넘었으나 아직 말 뿐이다. 이러니 안심하고 사업을 할 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 뿐 아니라 한국기업 전체가 대소 경협자금에 사활을 걸다시피 매달리게 됐다』고 말했다.
즉,대소 경협자금 30억달러는 미수금이 발생할 염려도 없고 우리나 기업과 연계해서만 사용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안전한」 우리 돈을 소련 관료들에 대한 로비를 통해 확보하면 된다는 것이다.
우리기업들의 소련시장에 대한 이와 같은 소극적인 태도는 소련의 정치상황이 불안하고 연방정부의 정책과 지방공화국의 정책이 서로 일관성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그러나 올해는 30억달러의 경협자금이 있어 우리기업들이 소련시장에 적극적이라 하더라도 내년부터는 과연 어떤 사업을 추진해야할지 아직 방향정립도 못한 상태다. 한국기업의 대소 경제진출은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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