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칼럼] 놀랄 만한 수출도 안 통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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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우리나라 수출은 1천9백억달러를 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또한 지난 5년간 세계시장에서 한국의 수출비중은 2.5%에서 상향 추세에 있다. 이러한 수출실적은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걱정해온 경제전문가들과 경제단체들을 놀라게 하는 수치다. 왜냐하면 이들은 지난 수년간 한국 경제를 정상화하기 위해 기업들의 경쟁력이 개선돼야만 하고, 강력한 임금 억제 없이는 국제시장에서 이길 수 없다는 주장을 애창곡처럼 불러왔기 때문이다.

*** 일본식 장기 불황에 빠질 수도

물론 섬유와 같은 단순상품과 저가의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은 중국과 동남아시아 저임금 국가들과의 인건비 경쟁에서 경쟁력을 상실해 국제시장에서 밀려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상품을 생산하는 많은 업체는 이미 그들 생산시설의 상당부분을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과 동남아시아에 이전했다. 이러한 현상은 역행할 수 없는 추세이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한국 경제도 글로벌화한 시장에서 함께 살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산업은 고부가가치 상품에 집중해야 하고, 서비스 업종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생산혁신(innovation)의 문제지 높아진 인건비에 있지 않다.

이로써 현재 침체돼 있는 한국 경제의 적정한 치유방법에 대해서는 국제경쟁력과 관련해 주장되어온 단순한 임금비용 인하 주장과는 다른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작금의 한국 경제 문제는 국제경쟁력보다는 취약한 국내수요에 있다. 따라서 다른 해결책들이 강구돼야만 한다. 최근 한국 경제의 동향을 보면 수출호조에 힘입어 생산.출하는 다소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나 소비와 투자수요는 계속 침체 상태에 있다.

원래 정부는 하반기에 미국 경제가 회복되면 우리 경제도 그 영향으로 회복될 것으로 예측했으나 미국 경제가 지난 3분기에 7% 이상 성장했음에도 한국 경제는 아직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태다. 물론 해외경제 여건의 호전으로 수출은 괄목할 신장을 보이고 있으나 이것이 국내 투자와 소비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의 중.장기 정책적 노력이 없을 경우 한국 경제는 장기침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국내소비와 투자수요 침체의 근본적 원인은 무엇일까. 소비부진은 소득분배의 구조적 요인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소비의 중심을 이루는 중산층이 1998년 이후 급격히 붕괴돼 저소득층으로 편입됨으로써 소비능력이 현저히 저하됐다. 그간 가계대출의 증대와 신용카드의 남발로 유지됐던 소비수요는 3백50만명을 초과하는 신용불량자를 양산함으로써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됐다. 이와 같이 국내 소비수요가 침체된 상황에서 기업들은 이윤의 기대가 불확실하므로 투자를 지연시킬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4백조원 이상의 부동자금은 마이너스 실질금리 상황에서 부동산 투기의 원천이 되고 있다.

지난 10월 29일 정부는 거시경제정책의 보완 없이 강남의 아파트 투기 억제를 목적으로 보유세와 양도소득세 중과대책을 발표했다. 보유세는 과세의 형평성 제고, 세수증대 목적으로 중과될 수 있으나 투기대책으로는 적합지 않다. 1가구 다주택 소유자에 대한 보유세 중과는 강남의 경우처럼 거주 수요가 지속되는 한 전.월세 등의 인상을 통한 보유비용의 전가로 별다른 불이익을 줄 수도 없다.

*** 총수요 위축시킬 부동산 대책

또한 양도소득세에 의한 투기억제 대책이 성공하려면 부동산 거래의 위축으로 주택시장의 기능마비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조치는 총수요 증가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우리는 90년 초 부동산 거품 붕괴 이후 수출의 증가를 통한 국제수지의 지속적 흑자에도 구조문제와 함께 소비와 투자수요의 부진으로 10년 이상 장기 침체를 겪은 일본의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놀라운 수출실적이 왜곡된 경제구조의 치유 없이 자동적으로 국내 경제 활성화에 연결된다는 안이한 사고는 현재 침체를 지속하고 있는 한국 경제 상황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김종인 前청와대 경제수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