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해,분노 다음의 과제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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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식수의 페놀오염사건으로 국민의 분노와 규탄이 비등해지자 정부가 산업폐기물 대책강구에 갑자기 부산을 떠는 모습은 좀 잔망스럽다는 인상을 준다.
물론 이런 큰 사건을 계기로 잘못돼온 시정을 반성하고 바로잡겠다는 노력을 촉진하는 것을 책잡을 일은 아니다. 그러나 거의 해마다 있어 왔던 식수원의 오염소동에도 불구하고 같은 오류가 반복돼온 현실에서 생각하면 이번에도 일과성 대책이나 민심무마용 푸닥거리 정도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우려를 떨쳐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공해문제가 여론화될 때마다 정부의 예산과 인력타령은 관성화돼 있다시피 되풀이 된다. 그러나 이번 페놀오염사건만 봐도 드러난 것은 우선 관련공무원의 근무태만이 아니던가. 폐기물 발생량과 처리시설의 용량부족 및 일부 고장 사실은 폐기물처리대장 한번만 들춰보았어도 간단히 점검될 사항이다. 환경공무원을 증원하기 전에 폐기물의 관리와 감시체계의 정비가 앞서야 할 것이다.
우선 폐기물을 자체적으로 처리하는 업체의 경우다. 생산제품의 종류에 따른 원료투입과 제품생산 결과 배출되는 폐기물의 양은 출고제품의 물량과 대비하면 산정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업에 설비된 폐기물처리시설의 용량을 점검하면 처리상황은 명백해진다.
처리시설의 가동여부 또한 별도의 소요에너지 소비측정장치에 의해 점검이 가능할 것이다. 현행법상 기업은 산업폐기물의 발생량과 재생·이용현황,처리실적 등을 폐기물 관리대장에 기록해 보존하게 돼있으므로 이런 법규만 잘 지키도록 해도 감시기능은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폐기물 처리시설이 없어 전문처리업체에 위탁하는 경우는 전체업체의 55%,양적으로는 하루 3만2천t에 이른다. 전문처리업체라고는 하나 이들의 자본규모가 영세하고 기술이 낙후돼 있어 대부분 원시적인 방법인 매립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전용매립장 확보마저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로 여의치 못해 야산이나 하천,심지어는 수송도중 도로상에 버리고 도망하는 식의 반사회적 투기행위를 불법적으로 자행하고 있다.
폐기물 전문처리업체가 제 구실을 다하려면 최종 폐기물의 발생량을 최소화할 수 있는 선진첨단처리기술을 도입하고 개발해서 활용할 수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나 대기업이 폐기물처리산업에 직접 나서야 한다. 재래식의 매립이나 소각처리 만으로 해결하기에는 우리의 산업쓰레기는 양과 질적인 면 모두 이미 한계를 넘어선 상태다. 정부와 대기업이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직접 나서야 한다.
미국의 경우 유해한 산업쓰레기의 90%가 전문업체에 의해 처리되고 있다 한다. 이들은 각기 수십억달러의 순익을 내는 대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쓰레기산업이 새로운 하이테크를 개발해 수지맞는 산업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국민의 분노에 찬 여론에 쫓겨 일시적인 민심무마에 급급할게 아니라 실현가능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데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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