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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서울대 보디빌더' 여성 첫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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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매년 서울대에선 가을에 역도부 주관으로 '미스터(Mr.)서울대학교' 선발대회가 열린다. 1968년 시작해 올해로 스물아홉번째를 맞는 이 대회는 서울대에서 가장 멋진 근육을 자랑하는 학생을 뽑는 이벤트다. 그런데 오는 20일 열리는 올해 대회를 앞두고 역도부가 술렁대고 있다. 대회 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참가 신청서를 냈기 때문이다.

서울대 첫 여성 보디빌더에 도전한 사람은 이 대학 체육교육과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박정희(朴貞姬.35)씨. 여섯살짜리 딸을 둔 朴씨는 전주기전여자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가르치는 교수이기도 하다. 朴씨는 입문 2년차의 보디빌더.

"97년 초에 딸을 낳고 7개월 정도 젖을 먹였는데 몸매에 신경 안쓰고 젖만 잘 나오게 하려고 하루 다섯끼씩 밥을 먹었어요. 특히 고깃국물 진한 미역국을 많이 먹었더니 젖을 끊을 땐 임신 전보다 체중이 20㎏ 이상 불었더군요."

결혼 전 1백65㎝의 키에 체중이 51㎏이던 朴씨는 97년 말 75㎏까지 나갔다. 朴씨는 그후 식이요법으로 다이어트를 했지만 한번 늘어난 체중은 65㎏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허기를 견뎌가며 일시적으로 살을 빼봐도 잠시 뿐이었다. 학교 일에 바쁜데다 남편 온화천(溫和千.36)씨가 97년 미국으로 유학가면서 몸매 관리에 신경을 덜 썼던 탓도 있었다.

그는 지난해 3월 무심코 거울을 들여다보다 충격을 받았다. "뚱뚱한 내 모습이 그렇게 흉물스러울 수가 없더군요. 마음은 아직 대학 신입생인데…. 너무 서글펐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무렵 朴씨는 TV프로그램에 소개된 전미 피트니스 챔피언 김혜영(32.미국명 테스 영)씨의 몸매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 그는 金씨에게 e-메일을 보내 "나같은 평범한 직장여성도 운동하면 당신처럼 될 수 있느냐"고 물었다. 金씨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웨이트 트레이닝의 여러가지 요령을 적어 답장을 보내왔다.

金씨의 격려로 자신감을 얻은 朴씨는 곧장 헬스클럽에 등록하고 매일 한시간씩 땀을 흘렸다. 성과는 바로 나타났다. 석달 만에 무려 9㎏이 빠진 것이다. 처음에 "저러다 말겠지"라며 무심하던 동료 교수들도 나중엔 "살 뺀 비법 좀 알려 달라"며 놀라워했다. 지난해 여름 미국에 갔더니 확 바뀐 아내의 몸매에 남편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보디빌딩을 1년 넘게 하면서 욕심을 더 냈다. "지난해 전주에서 열린 보디빌딩 대회에 구경갔는데 남자선수는 2백명이 넘는데 여자는 달랑 세명 밖에 없더라고요. 여자는 시범경기 수준이었어요. 그래서 1년 뒤엔 꼭 나도 한번 나가보겠다고 마음먹었지요."

朴씨는 지난 8월 전북지역 보디빌딩 대회에 출전했다. 여자부 55㎏ 이하 체급에 나갔는데 출전자는 두명뿐. 열다섯살의 고교 3학년생 경쟁자를 물리치고 '당당히' 1등을 차지했다. 朴씨의 대회 사진은 대학 홈페이지에 올려져 제자들의 열렬한 호평을 받았다.

보디빌딩은 그의 삶에 또다른 변화를 가져왔다. 朴씨는 올 초 서울대 체육교육과 석사과정(야간)에 스포츠경영 전공으로 입학했다. 전북대에서 컴퓨터공학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했던 朴씨는 "컴퓨터 분야 이외의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싶었는데 운동을 하다보니 스포츠 경영에 관심이 생겼다"고 했다. 운동이 취미 차원에서 연구 대상으로 바뀐 셈이다.

이번 '미스터 서울대학교'선발대회에는 "첫 여성 출전자가 돼보라"는 서울대 지도교수의 권유로 출전하게 됐다. "보디빌딩에 관심있는 몇몇 여학생들에게 함께 출전하자고 졸랐는데 부모님이나 남자친구가 반대한다며 거절했어요. 보디빌딩은 엄연한 스포츠인데 여자가 한다고 해서 왜 이상하게 바라보는지 모르겠어요."

朴씨는 요즘도 꾸준히 하루 한시간 이상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자신의 강점은 다리 근육이라고 했다. 식단은 철저히 채식 위주다. "쉽게 살빼는 방법은 결코 없습니다. 식이요법으로 한달에 20㎏을 뺀다는 식의 과장광고에 기대지 마십시오. 노력한 만큼 정직하게 결과가 나오는 운동을 꾸준히 하는 편이 훨씬 나아요." 날씬해지고 싶은 여성들에게 권하는 朴씨의 비법이다.

글=김정하,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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