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기 겁나는 수도물/김일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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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기업인 두산전자(구미)가 몰래 버린 페놀(유해화학물질) 폐수가 낙동강을 거쳐 수도물에까지 스며들었다. 16일부터 20일까지 수도물 악취소동이 일어난 대구·구미·김천·칠곡 등 낙동강 연안에선 주민들이 때아닌 물소동을 겪고있다.
발암우려마저 있는 페놀이 섞인 강물은 낙동강을 타고 흘러 18일 밤부터 마산·창원의 악취소동으로 번졌고 19일부터는 4백만 부산시민들을 불안에 몰아넣었다.
유례없는 「환경범죄사건」인 이번 일은 그 피해의 광역성 때문에 일반범죄보다 훨씬 중대시되어야 하며 대처 또한 철저해야 하는 환경사건의 특성을 웅변해 주었다.
이번 사태는 일부 공해업주들의 강심장과 환경처·경북도·대구시 등 관계당국의 직무유기·감시 소홀이 빚어낸 합작품으로 볼 수 있다.
두산전자측은 불법으로 방류한 독성 폐수가 강을 거쳐 자신들의 가족까지 먹게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한번쯤이라도 생각해 보았을까.
그랬다면 과연 이같은 반국가적·반인간적 행위를 할 수 있었을지 묻고 싶다.
관계당국의 직무유기는 더욱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이번 보다는 악취가 약하기는 했지만 지난 2일 구미시에서 페놀로 인한 악취소동이 있었는데도 경북도등은 수자원공사 급수지역임을 빌미로 원인규명·대책수립 없이 지나갔고 환경처 역시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환경처는 지난 연말부터 기동단속반 증원등 공해단속을 강화하던중에 이런 큰 구멍을 지나쳤고 18일 오후에야 특별단속반을 대구일원에 보내 뒷북을 치고 있다. 대구시는 취수장 수질검사를 소홀히 해 주민신고를 받고서야 문제가 있음을 알았고 페놀탓이라는 원인규명도 13시간 뒤에야 해낸데다 무책임한 급수를 계속해 「인재」를 가중시켰다.
경북도·대구시는 이런 난리가 났는데도 19일 『인체에 영향이 없는 수준』이라는 낯 두꺼운 발표를 했다. 대구사건 초기 페놀의 함유량은 국내 허용기준치의 20배나 됐었다.
우리나라 환경사건 사상 최대규모로 기록될 이번 사태는 수질관리 체계의 허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정부는 이번 사태에 대한 납득할만한 대응조치와 함께 여러 기관에 흩어져 있는 수질관리를 실질적으로 일원화해 뒤늦게나마 「외양간」을 고쳐야할 것이다.
물 한모금 마음 놓고 못마신다는 것은 정부의 존재이유와 직접 관련되는 중대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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