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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2세 시대(9)|소주장사 이미지 벗고「유통」에 정보통신 접목|진로그룹 장진호 회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서울 서초동 진로 도매센터 맞은편, 소주회사로 흔히 알려져 있는 진로그룹 본사사옥에 들어섰는데 소주냄새는 거의 나지 않았다.
5층 장진호 회장(39)방에서도 그룹의 상징인 두꺼비 깃발보다「CHALLENGE 2000」(2000년을 향해 도전하라)란 깃발이 더욱 크게 보였다.
『술 만으론 성장에 한계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업종전문화를 부르짖는데 성장 없는 전문화는 무의미한 것이지요.』30대 후반 젊은 장 회장의 목소리는 걸걸했다.「술장사」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업종 다각화를 꾀하며 도전하는 힘을 느끼게 했다.
진로는 이제 단순한 소주회사가 아니다. 시울 강남의 진로 도매센터는 유통업계의「무서운 아이」가 됐다. 지난해 10월 해외건설업 면허를 딴 진로건설은 걸프전 이후의 중동지역 복구사업과 동남아 진출을 목전에 두고 현재 상담이 무르익고 있다.
진로는 또「20세기의 마지막 첨단산업」으로 불리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불모지상태인 위성통신사업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앞으론 유통업도 정보통신망과 연계해 물 동량을 파악하고 관리하며 전국 체인망을 통해 집에서 앉아 주문하고 물품을 배달 받은 뒤 대금은 은행에 납부하는 식으로 발전하리라고 봅니다.』

<위성통신업 추진>
장 회장은 이와 같은 정보통신과 유통업의 접목을 위해 앞으로 인구 30만 명 이상 되는 모든 도시에 같은 형태·구조로 된 유통체인점을 세울 계획이다. 우선은 정보통신 사업에, 장기적으론 위성통신사업에 참여한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진로」하면『야야야야야야 차차차』로 시작되는 국내최초의 CM송이 말해 주듯「두꺼비가 웃고 있는」소주를 떠올린다.
『현재 진로가 국내 소주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3%선입니다. 앞으로도 이 선을 유지해 나갈 생각입니다. 술 시장은 큰 이익을 남겨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근 정부가 소주원료인 주정배정제도를 자유화할 움직임을 보이자 진로의 시장잠식을 우려한 지방 소주업계가 반발하는 것에 대해 장 회장은 이같이 언급했다.
단순히 주류제조업에서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분야에 투자해 끊임없는 변신을 시도하겠다는 이야기다.
진로는 일제하인 1924년 창업주인 고 장학엽 회장이 평남 용 강에서 진천 양조회사를 차린 게 효시로 3년 후면 고희를 맞는다. 6·25로 터전을 잃었으나 54년 서울 신길 동에 서광주조를 차려 본격적으로 오늘의 진로를 만들어 냈다.
진로는 그 이후 착실하게 성장, 당시 삼 학과 함께 소주업계의 양대 산맥을 이루었다.
66년 서광주조에서 진로주조로, 75년에 다시 현재의 (주)진로로 바꿨다. 그리고 그해 2세 경영체제로 전환했다.

<사촌간「대권」다툼>
그 동안 같이 사업을 해 오던 장학엽 회장 등 5형제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가족회의를 통해 5형제 중 둘째인 학섭씨(당시 서광 회장)의 강남인 익룡씨에게 경영대권을 물려주었다. 창업 주 학엽씨에게도 봉룡·진호·준룡씨 등 3형제가 있었지만, 당시 모두 30살이 못돼「경영능력을 갖출 만큼 성장한 뒤」다시 불러 준다는 묵시적 약속 아래 서였다.
그러나 이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84년 11월 주 총에서 당시 장진호 상무는 사촌형인 장익룡 사장(현 서광회장)을 퇴진시키고 부사장으로 경영을 맡았다.
「경영목표나 인생관등이 외부인사들에 의해 방해를 받아서는 곤란하지요.』
당시의 아팠던 사촌간의 경영권 다툼에 대해 장 회장은 이렇게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경영일선에 나선 장진호 당시 부사장은 그 동안 주종을 이룬 주류 관련 업에서 과감하게 탈피, 유통업으로 눈을 돌렸다. 86년 4월 진로유통을 설립하고 이듬해에는 입주 예정자들로부터 미리 돈을 받아 상가건물을 짓다가 부도를 내고 은행관리를 받던 한일상공의 강남 도매시장을 인수했다.
그 자리에 진로 도매센터를 지어 88년 l월25일 개장했으며, 바로 그날 진로그룹 회장으로 장진호 부사장이 취임했다. 이로써「진로」의 신길동 시대는 가고「서초동 시대」가 새로 열렸다. 진로 맨 들은 이를「진로의 제2 창업선언」으로 부른다.

<심벌마크 곧 바꿔>
진로는 도매센터 앞 한국 트럭터미널·용산 시외버스 터미널부지를 잇따라 매입, 용산 시외버스 터미널을 서초동으로 옮기게 해 도매센터의 활성화를 꾀했다. 진로유통은 자본·투자 면에서 술회사인 지로를 능가하고 있다.
장 회장은 젊은 만큼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다. 88년 초 부실기업이던 조선공사 인수계획을 세운 장 회장은 미니버스에 인수 지휘본부를 설치, 기동력을 발휘해 조공주식을 매입하는 등 1년 반 동안 열심히 뛰었다. 그러나 89년 5월 조공은 공개입찰에서 한 진에 넘어갔다.
장 회장은 크게 낙담했으나 곧 한진그룹 조중훈 회장에게 축하 화환과 편지를 보냈다.
89년 들어 장 회장의 다각화전략은 더욱 바빠졌다. 우신 투자자문, 새 그린(광고업), 영국합작술회사인 JUD가 잇따라 설립됐다. 또 진로제약·우신 상호신용 금고·진로건설·연합전선 등을 인수했다. 이달 초에는 통조림 전문 제조업체인 펭귄을 인수, 진로를 l8개 사를 거느리는 종합그룹으로 변신시켰다. 또 최근에는 증권업에 진출하기 위해 영국회사와 합작을 추진하고 있다.
진로는 오는6월 그룹의 심벌마크를 국제화를 겨냥하는 종합그룹의 이미지에 맞게 바꾼다. 상표「두꺼비」(주)진로와 진로에서 만드는 술 종류의 상품에만 쓸 계획이다.
장 회장은 서울고·고려대 경영학과 출신이며 독실한 천주교신자다. 바둑실력은 아마 5단.
진로그룹은 오는 95년까지 주류·식품 업, 유통·물류, 제조업, 건설 및 서비스업, 금융업 등 5개축으로 나눠 키워 나가 매출액을 3조원 정도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젊음과 도전-. 장 회장이 과연 어느 정도의 추진력으로 진노를 변신시킬지 관심거리다.

<박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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