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대출규제 … 발표한 금감원도 헷갈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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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우는 어떻게 되나요?" "그건…글쎄, 그 경우는 저도 헷갈리는데요." 금융감독원이 '연소득 대비 부채비율 400%' 등 새로운 주택담보대출 규제책을 발표한 19일 기자는 복잡한 내용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관련 부서를 찾아갔다.

먼저 만난 사람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대책을 발표한 금감원 간부. "아 그건 사실 내가 담당자가 아니라서 잘 몰라요. ○○씨에게 물어 보세요."

다시 찾아간 다른 간부에게 구체적인 사례에 대해 물어 보자 헷갈린다며 모호한 답으로 대신했다. "연간 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400%가 넘는 사람에겐 돈을 빌려 주지 말라는 뜻이냐"는 질문에 그는 "은행이 이런 고위험대출자에 대한 현황을 금감원에 보고하란 뜻일 뿐이다. 결정은 은행의 몫이다. 하지만 은행으로선 압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에둘러 답했다.

이날 저녁 기자는 한 시중은행 임원을 만났다. 이 임원은 금융감독 당국의 대책을 열띤 어조로 성토했다. 그는 "금감원에서 협조나 보고 등의 방법으로 지시가 내려와 은행 본부를 거쳐 창구에 이를 때가 되면 거대한 쓰나미(지진해일)로 변한다"며 "'미국이 기침하면 일본이 감기 걸리고, 한국은 폐렴에 걸린다'는 식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행정도시다, 기업도시다 해서 한 해 수십조원씩 토지 보상이 이뤄져 시중에 돈이 넘쳐나고, 아파트 공급은 부족한 현실에서 은행 대출을 막아 집값을 잡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결국 가엾은 서민들만 옭아매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11.15 대책 이후 한 달여 사이에 시중의 돈줄을 죄는 금융 당국의 조치가 다섯 차례나 쏟아졌다. 한국은행이 단기 원화예금과 외화예금에 대한 지급준비율을 인상했고, 금감원은 은행의 대손충당금 적립비율 인상과 '채무상환능력 기준 대출' 방안을 내놨다. 금감원은 지난달 16일에는 은행에 대출을 자제하도록 창구지도했다가 여론에 밀려 하루 만에 이를 취소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금융 감독 당국은 이런 부동산 관련 규제를 쏟아 내면서도 항상 '은행의 건전성을 감독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은 거시경제를 관할하거나 집값을 잡는 기관이 아니다. 최근 주택담보대출의 급증으로 가계대출 위험성이 높아져 은행 건전성 감독 차원에서 하는 일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내용인즉 틀리지 않다. 은행 건전성이 나빠질 것을 우려해 감독당국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은행 창구에서 느끼는 현실은 '건전성 감독'이 아니라 '일관성 없고 갑작스러운 대출규제'다. 또 국민은 예고 없는 대출규제에 허둥댈 수밖에 없다. 금융 당국의 변명을 100%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금융 당국은 결국 정부가 국토개발 등등으로 남긴 후유증을 수습하기 위해 뒤치다꺼리하고 있는 셈이다. 현 정권이 벌인 일에 골병들고 금융 당국의 뒤치다꺼리에 한숨 쉬는 국민은 이래저래 힘들다.

최준호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