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비정규직 끌어안은 우리은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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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우리은행이 비정규직 직원 31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 기존 정규직과의 복리후생 차별을 없애고, 임금도 단계적으로 정규직 수준으로 올린다고 한다. 은행의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는 점을 감안해 노조는 기존 정규직의 임금을 동결하기로 합의했다. 그동안 비정규직 일부가 시험 등을 거쳐 정규직으로 전환한 경우는 있었으나 이번처럼 비정규직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처음이다.

정규직 노조가 자신들의 밥그릇을 줄이는 희생을 감수하면서 비정규직을 끌어안은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우리은행이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 문제를 풀기 위한 실마리를 제공한 셈이다. 주지하다시피 외환위기 후 급속히 늘어난 비정규직(전체 근로자의 36%인 546만 명)은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등 우리 사회의 고민거리다. 기업들은 인건비를 줄일 요량으로 정규직을 써야 할 자리에도 비정규직으로 채우는 경우가 많았다. 은행 창구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복리후생비가 두 배나 차이나기도 한다.

하지만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늘리는 게 능사는 아니다. 당장 인건비를 줄이는 효과는 있겠지만 조직 내 결속력이 떨어지고, 고객 서비스가 소홀해지는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고객과 매일 마주치는 창구 텔러나 콜센터 직원의 서비스에 문제가 생긴다면 치명적이다. 또 비정규직 법안에 따라 숙달된 비정규직을 2년마다 바꾸는 것은 기업으로서도 손실이다.

국민은 이번 우리은행의 실험을 관심 있게 지켜볼 것이다. 노조는 비용 절감을 위해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초심을 유지하기 바란다. 경영진도 공적자금이 들어간 은행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야 할 것이다. 노조가 어물쩍 성의 표시를 하다가 다시 밥그릇 챙기기에 나서거나, 경영진이 비정규직을 구제했다는 식의 생색내기에 몰두할 경우 차라리 이번 일을 하지 않은 것만 못할 수도 있다. 우리은행이 잘해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다른 금융권, 나아가 재계 전체로 확산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