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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12. 오키나와서 온 엽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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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한국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서울 상공에 미군 B29기가 자주 출몰했다.

서울로 돌아온 지 며칠 뒤 나는 시댁이 있는 황해도 해주로 향했다. 시부모님은 나를 보시고 그다지 반가워하시는 것 같지 않았다. 남편의 편지를 보신 시어머님은 더욱 굳은 표정을 지으셨다. 자신이 전쟁터로 나가게 되니 나를 친정으로 보내주고 혹 자기가 전사하거든 며느리를 자유롭게 해 주라는 그의 편지 내용이 마음에 걸리셨던 걸까.

며칠 뒤 서울 친정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명자야, 응균이한테서 엽서가 왔어. 오키나와에 있단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기쁨에 들떠 있었다. 남편은 아직 살아 있다!

"어머님, 오키나와에서 엽서가 왔대요!" 흥분한 나는 시어머님께 곧바로 말씀드렸다. 그러나 오히려 시어머님은 역정을 내시며 "이런 불효자식이 있나! 부모에게 먼저 소식을 알려야지. 당장 그 엽서를 이리로 보내 달라고 해라."

예기치 못한 시어머님의 반응에 나는 너무 놀랐다. 도저히 시어머님의 심중을 헤아리기 힘들었다. 남편은 시부모님에게 보내는 엽서도 함께 부쳤겠지만 전쟁통이라 해주까지 엽서가 오려면 서울보다 며칠 더 걸리는 것뿐이었을 텐데.

남편이 살아 있다는 기쁜 소식을 빨리 시어머님께 알리려던 나는 오히려 시어머님의 심기만 불편하게 만든 셈이 되었다. 그리고 며칠 뒤 해주에도 남편의 엽서가 도착했다.

시댁으로 온 지 여러 날이 흘렀다. 인사만 드릴 셈으로 겨울옷도 못 챙겨 온 것을 아시면서도 시부모님은 서울로 돌아가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이른바'시집살이'가 시작된 것이었다. 꼭두새벽부터 어린 시동생들과 시누이의 도시락을 싸고 늦은 밤까지 시아버지의 술상을 봤다. 대가족 살림을 책임진 지 한달이 흘렀다.

어느 날 친정아버지가 참다 못하셨는지 해주로 전화를 했다. "명자가 심신이 지쳐있어서 시골로 보내 요양을 시키겠으니 괜찮으시다면 명자를 돌려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해주 시댁에서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집에 온 나에게 어머니는 시댁 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시기만 했다. 서울 상공에는 시끄러운 굉음을 일으키는 B29기의 비행이 계속되었다. 사람들의 생활은 피폐해져 가고 있었다. 우리 집 역시 양식이 모자라 집안일을 하던 사람들을 거의 다 내보내고 물물교환으로 식량을 구했다.

명목은 요양이었지만 외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 곧바로 시골로 떠났다. 외할머니가 머물고 계신 관대리는 한국전쟁 뒤 강을 경계로 영영 이북 땅이 된 곳이다. 뒤로는 산, 앞으로는 맑은 강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나를 본 외할머니는 너무 기뻐하셨다. 괴로웠던 지난 일들이 마치 꿈속에서 일어난 일들처럼 느껴졌고, 나는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다.

노라·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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