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편 딱한 제자 함께 살면서 대학까지 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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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데려다 키우겠습니다."

대구일중 박영숙(61.사진) 교사가 25년 전 자신이 맡았던 학급에 있던 중2 학생 이모(40)씨를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면서 이모씨 부모에게 했던 이야기다. 이모씨는 가정형편 때문에 공납금을 내지 못해 학교를 그만둬야 할 처지였다. 당시 이미 세 아이의 어머니였던 박 교사 입장에서는 대단한 결심이었다. 박 교사는 4년간 이모씨를 자기 아이처럼 키워 대학 진학까지 시켰다. 이모씨는 현재 교회 전도사로 불우한 학생을 돕고 있다.

박 교사는 이모씨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키운 과정을 글로 썼다. 사제 간의 훈훈한 사랑을 담은 이 글이 19일 교육인적자원부가 주최한 '2006 교육현장 체험수기'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박 교사가 이모씨를 만난 것은 1981년 대구 경북사대부속중학교에 근무할 때다. 당시 중2 담임이었던 박 교사는 이모씨가 장기 결석을 하며 연락이 끊기자 수소문을 시작했다. 3분기 공납금을 못 내 제적처분을 받을 위기에 처하자 자신의 봉급으로 대신 내준 뒤였다.

이모씨는 부모의 벌이가 끊겨 학교에 다니기는커녕 돈을 벌어야 할 형편이었다. 박 교사가 데려가겠다는 말에 이모씨 아버지는 "고맙습니다"라고 대답할 정도로 가정형편은 어려웠다.

현직 교사였던 남편 김정택(65.퇴직 교장)씨는 처음에는 당황했다. 박 교사에게 "아무리 그래도 나에게 상의 한마디 없이 이럴 수 있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이모씨의 딱한 사정을 듣고 "자식처럼 키우자"며 박 교사의 편이 돼주었다. 박 교사의 아이들도 이모씨를 "누나, 언니"로 부르며 가족으로 맞이했다.

이런 가족을 힘들 게 한 것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박 교사는 "주변 사람들이 '남편이 어디서 딸을 낳아 데려왔다''아이를 키워 부려먹으려 한다'는 말을 들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이모씨는 중학교를 마치고 제일여상에 입학해 3년간 학업을 마친 뒤 세무사 사무실에 취업했고, 계명대 의상학과(야간부)에 진학하면서 독립했다.

이모씨는 현재 박 교사의 둘째 아들이 세운 서울 금천구의 한 교회에서 전도사로 활동하며 박교사와의 연을 이어가고 있다. 자신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꿈을 꺾으려 하는 학생들을 상담하며 돕고 있다. 이모씨는 이날 시상식장에서 "박 선생님의 배려로 남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며 "선생님이 주신 사랑을 더 크게 갚겠다"고 말했다.

박 교사는 "남의 집 눈칫밥을 먹어야 하는 아이가 힘들었지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라며 공을 이모씨와 남편 김씨에게 돌렸다. 김씨는 "사제가 모두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박 교사는 내년 8월 정년퇴직한다.

글=강홍준,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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