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제선거법 개정 시급하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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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1일 헌법재판소가 광역의회선거 입후보자의 기탁금 조항에 대해서는 「헌법불일치」 결정을,농협·수협 등 협동조합 조합장의 지자제선거 입후보 금지조항에 대해서는 위헌결정을 내림으로써 지자제선거법은 그 개정이 불가피해졌다.
우리는 우선 헌법재판소가 소원접수 1개월여만이라는 빠른 시일안에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을 환영한다. 과도한 기탁금에 대한 헌법불일치 결정은 돈과 기성 정치조직의 배경이 없는 유능한 신인들의 진출에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만으로 현행 지자제선거법의 결점과 모순이 바로잡아졌다고는 보지 않는다. 현행 지자제선거법은 지난 연말에 여야가 자신들의 기득권 보호를 위해,그나마 졸속으로 마련한 것이기 때문에 이번에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얻은 부분 이외에도 허다한 문제점들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헌재의 이번 결정으로 지자제선거법 개정이 불가피해진 만큼 차제에 그동안 여러 단체나 정당들에서 지적해온 불합리한 조항들이나 문제점들도 함께 검토하여 선거법을 전면적으로 손질해줄 것을 촉구하고자 한다. 그래서 적어도 오는 광역의회 선거전까지는 새로운 정치를 기대하는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선거법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시민운동단체등에서는 현행 선거법이 선거운동의 해석을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규정하고 있고 선거운동의 주체나 방법도 극도로 제한하고 있어 건전한 시민단체의 활동마저 제약하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구체적으로 제38조·40조·41조·74조가 그것이다. 이들 조항에 따르자면 유권자들은 사실상 20분씩의 합동연설회 이외에는 후보자의 자질과 정견을 파악할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이다.
또한 현행 선거법은 선거운동에 있어서 정당후보자와 무소속후보자를 차별함으로써 기존 정당권의 기득권을 보호해주고 있다는 비판도 받아왔다. 후보자를 위한 지원기구는 둘 수 없다고 해놓고도 정당의 선거대책기구는 허용한 제44조,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각종 집회를 금지해 놓고도 정당활동은 허용한 제68조 등이 바로 그것이다.
제기된 문제점들은 이 뿐만이 아니다. 과열선거의 원척적인 방지를 위해서는 광역의회선거에서는 중선거구제나 정당연기명식 투표방식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여성과 노동자·농민 등 소외계층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비례대표제의 도입주장도 나왔다. 뿐만 아니라 기탁금제도를 아예 없애고 기본선거비용을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는 철저한 선거공영제를 실시하자는 요구도 있었다.
이 모든 주장을 그대로 다 받아들수는 없겠으나 하나 하나 검토해 볼만한 가치는 충분한 것이다. 사실 현행 선거법을 마련할 때 당연히 그런 검토과정이 있었어야 했다. 그런데 그렇지 못했던 만큼 이번에만은 그것이 이루어져야 한다. 광역의회선거도 바로 닥치는만큼 국회는 각계의 요구를 편견없이 수렴할 수 있는 기회를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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