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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의 한」삭이며 회고록 집필준비|하산한 전두환씨 무엇하며 지내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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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작년 12월30일, 2년1개월 여의「백담사 유배」생활을 끝내고 연희동 사저로 돌아온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의외로 조용하게 새 생활에 적응해 가고 있다.
그가 이처럼 세상의 눈총을 덜 받게 된 것은 하산 직후 터진 의원뇌물외유·수서 택지 분양의혹·걸프전 등으로 정치권과 언론의 관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탓이 크다.
그렇지만 그가 아무리 소시민으로 지내고 싶어도 6공 후반기의 불안정한 정국상황이 언제 그를 또다시 관심의 대상으로 밀어 올릴지 모른다. 당장 민자당이 내 홍을 겪거나 노태우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이 가속화되면 구 여권의 단합 또는 정치세력화와 관련지어 전씨의 거취가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전씨의 최근생활은 외견상 아주 평온하다. 하산 시점이 연말연시 여서 그는 여귄 인사들과 자연스럽게 해후할 수 있었고 청와대도 연희동의 인파를 의례적인 문안으로 대범하게 보아 넘길 수 있어 피차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연초 연희 동에는 이재형 전 국회의장, 권익현 전 민정당 대표,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 권정달 전 민정당 사무총장 등 5공 인사 거의 전부와 김윤환·이한동·김종호·정석모·심명보·이치호·김태호 의원, 서동권 안기부장·안응모 내무·이상희 전 건설장관 등 전 현직 의원·각료 등 3백여 명이 다녀갔다.
노 대통령이 보낸 정해창 비서실장·김영일 사정 수석비서관 등도 다녀갔다.
전씨는 내방객에 따라 약간씩 다른 자신의 심정과 생각을 피력한다. 그저 인사나 받고 말 사람에게는 덤덤하게 대하고 다소 흉금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들에겐 백담사 유배 때의 고정, 노태우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인 섭섭함을 털어놓기도 한다. 불쑥불쑥 화가 치미는 모습을 했다가 여론의 역풍을 불러일으킨 경험 때문인지 구설수에 말릴 만한 말은 자제한다. 그의 직선적인 성격, 다변 성향에 비춰 두 달이 넘게「설화」거리가 안 나오는 것은 대단히 말을 조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하루 3∼4명 만나>
전씨는 연초 하례객을 대충 다 만난 뒤인 1월l8일부터 2박3일간 합천 선 영과 백암온천을 다녀왔다. 종가대학생들의 반대시위로 해인사 방문은 포기하고 말았다. 서울에 돌아와서는 최규하 전 대통령·이승만 전 대통령의 미망인 프란체스카 여사·윤보선 전 대통령 미망인 공덕귀 여사에게 차례로 인사를 다녀왔고 장인 이규동씨, 형 기환씨, 처남 이창석씨 및 장세동 전 안기부장, 안현태 전 경호실장 등 측근들의 집을 방문, 저녁을 함께 들며 청와대 밖의 물정 익히기를 했다. 전씨의 사가 방문은 87년 대통령 선거당시 노태우 후보의 연희 동 사저를 몇 차례 둘 른 이후 처음이다.
요즘은 찾아온다고 해서 누구나 다 만나지 않고 미리 약속한 사람을 하루에 3, 4명씩 만난다. 회고록 집필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를 하고 있으며 함께 사는 장남 재국씨 부부와 손자손녀, 이혼한 차남 재용씨, 3남 재만 군과 이따금 인근 자장면 집·곰탕 집을 찾아간다. 슈퍼마킷에 들러 상인·이웃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며 인근 국민학교에 배드민턴을 치러 가던 것도 개학과 더불어 포기하고 서울 근교 등산을 시작했다. 6일 처음으로 북한산을 부인 이순자 여사 및 측근들과 올랐다.

<측근 출마여부 주목>
전씨의 향후 거취와 관련, 측근들은 구체적인 구상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특히 정치적인 결정이나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시간이 지나 국민 여론이 가라앉으면 어떤 형태로든 명예회복을 위한 노력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생각은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명예회복의 길이 정치적 재기를 도모하는 것은 아니며 그렇게 돼질 수 없다는 것을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한다.
전씨는 그렇다 치더라도 허문도 전 통일원장관 등 측근들은 6공에 의해 실제이상「악한」이 되어 버린 그들의 이미지를 회복하고 가능하면 정치적으로 재기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허씨는 고향인 경남 고성에서 사실상 표밭을 일구고 있고 장세동씨도 일단 유사시 서울 출마를 생각하고 있다.
이들의 움직임을 오히려 민감하게 주시하고 있는 쪽은 청와대다.
특히 정가 전체에 지각 변동을 일으킬 만한 메가톤 급 정치 스캔들이 잇따르고 지방 의회선거. 총선 등 이 임박한 현시점에서 의외의 저력이 발동될 여지를 배제하지 않고 있다. 그만큼 전씨는 자금과 정치적 영향력 동원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장남 재국씨가 다음 총선 때 합 천에서 출마할 것인지 여부가 관심사다. 재국씨는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해 필요하다면 뛰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전 화해 회동 관심>
이런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움직임이 노태우 대통령과 전씨의 회동 가능성이다. 전씨의 외유 내지 제3의 장소 이전 권유에 실패, 결국 연희 동 귀환을 수용하고만 청와대는 노 대통령의 임기를 얼마 안 남기고 가급적 전씨와 화해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그러나 노문과 전문이 화해하는데 있어 노·전씨, 김옥숙·이순자씨 간의 느낌과 앙금의 강도가 다르고 자식들간의 감정도 부모들과는 다르다.
최근 여권이 취한 ▲법정 구속된 이창석씨 석방 ▲정초 정해창 비서실장 등의 연희 동 예방 ▲전씨 회갑 당시 이상연 민정수석 비서관을 통한 노 대통령의 축하화분과 떡·술등의 전달 ▲전경환씨에 대한 감형 조치 ▲전씨 측근인 최평욱 전 보안사령관의 산림청장 기용 및 김진영 교육사령관의 대장 승진 등 이 청와대가 퇴임 후를 고려해 전씨에게 보인 유화제스처란 얘기도 있다.
그러나『필요하다면 언제라도 만나겠다』는 노 대통령의 말과는 달리 전씨의 하산이후 노 대통령과 전씨 간의 직접통화가 한차례도 없었다. 이는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전화 또는 면담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 대수롭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두 사람이 만난다면 어디서 만날 것인가,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하며, 어떤 모습을 국민에게 보일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실은 전씨가 연말 백담사를 서둘러 나오게 된 배경에도 말못할 얘기가 많다고 한다.
작년 말 노 대통령이 모스크바에 가기 전 백담사로 전화를 걸었을 때 두 사람은 격한 언쟁을 했다고 한다. 그것 때문에 하산시기가 앞당겨 졌다는 얘기도 있다. 아무튼 노·전 두 사람의 회동은 청와대·연희 동간의 최대 현안 중 하나다.
청와대와 연희 동은 이처럼 노·전 회동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접점을 찾기에 고심 중인데 양측 모두 만약 감정의 앙금을 소 화하지 못해 금년 상반기를 넘긴다면 만남이 무산될 소지가 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김현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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