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포럼] 伊 부패전쟁이 실패한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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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탈리아 젊은 검사들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 노이로제 증세로 병원을 찾는 정치인들이 많았다. 1993년 4월 이탈리아 신문에는 "최근 1년새 악몽과 강박증을 호소하며 정신과 의사를 찾는 정치인들이 크게 늘었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갑자기 경찰이 들이닥쳐 수갑을 채우는 악몽에 시달려 잠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는 정치인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92년 2월 이탈리아 정치권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고 2년 동안 전체 상.하원 의원 9백45명 중 6백19명에 대해 면책특권 정지 요청서가 발부됐고, 3백21명이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송짱'이니 '안짱'이니 하는 말이 유행하듯 동서고금을 떠나 '부패와의 전쟁'은 대중의 박수를 받게 마련이다. '마니 풀리테(깨끗한 손)'로 불리는 이탈리아 사정(司正)혁명을 주도했던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 검사는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이탈리아 통일의 기틀을 다진 주세페 가리발디 이후 최고 영웅이라는 칭송이 자자했다. 하지만 정치권은 "소영웅심에 사로잡혀 세상 물정 모르고 까부는 애송이들이 나라를 말아먹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탈리아 정치권은 비례대표제를 소선거구제로 바꾸는 정치개혁안을 국민투표에 부쳐 여론의 예봉을 피하는 한편, 여자 관계 등 사생활 문제를 캐내 검사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또 이러다가는 '검찰공화국'이 될 우려가 있다며 사법권을 제한하는 입법 조치에 착수했다.

사전구속영장 발부 기준을 살인과 테러, 마피아 관련 범죄로 한정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마련됐다. 이에 반발해 디 피에트로 등 네명의 밀라노 검사가 94년 말 사표를 던지면서 2년 가까이 이탈리아 정.재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마니 풀리테'의 열기는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언론의 관심도 급속히 식었다.

개혁에는 당연히 고통이 따른다. 정치권과 재계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고 1년이 지난 93년 이탈리아 전역에서 각종 공사 중단 사태가 속출, 10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기업인들이 정치인에게 갖다 바친 돈은 고스란히 소비자인 국민 부담으로 전가된다. 부패의 거품이 빠지면 결국 국민에게 이익인 것이다. km당 8백억리라였던 밀라노 지하철 건설비는 '마니 풀리테'이후 4백40억리라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의 '마니 풀리테'가 성공했다고 보긴 어렵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탈리아는 국제투명성기구(TI)가 매년 발표하는 부패지수에서 여전히 유럽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거악(巨惡)을 상징했던 기민당과 사회당은 해체됐지만 부패의 주역 중 상당수는 여전히 정치권 언저리에 머물러 있다. 지지부진한 수사와 지루한 법정공방 속에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국민이 염증을 느끼기 시작한 데다 기소유예 같은 솜방망이 처벌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병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를 찾아냈지만 환자 격리와 항체 개발이라는 후속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지금은 유럽의회 의원이 된 디 피에트로는 말한다. '부정부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공직에 출마할 수 없다'는 법 조항 하나만 확립됐더라면 결과는 사뭇 달라졌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쇠는 달궈졌을 때 두드려야 한다. 정치권에 대한 검찰의 이번 수사가 기름기 번지르르하고 뻔뻔한 얼굴의 썩은 정치인들을 퇴출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우리의 국가 수준은 또 다시 몇십년의 상대적 후퇴를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 반(反)부패와 국가경쟁력이 비례하는 시대로 세상은 이미 바뀌었다. 여론의 매서운 눈길만이 그 일을 해낼 수 있다.

배명복 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