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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 질서|조현영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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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세계를 시끄럽게 하던 걸프전은 미국을 대표로 한 다국적군의 승리로 끝났다. 지상전, 지상전하며 대단한 전쟁을 치를 것처럼 분위기가 고조돼 오던 걸프전이었다.
그러나 이라크는 지상전 개시 나흘만에 반격 비슷한 행동도 제대로 보이지 못하고 패주 했다.
미국 측은 각종 신무기의 성능과 위력을 과시하며 세계 제일의 군사 강국임을 입증하는 독무대를 마련한 셈이다. 어른이 어린아이 손목을 비튼 거나 다름없는 싱거운 전쟁이었다.
미 국방부는 그동안 이라크의 전력을 고의로 과대 평가, 엄청난 규모의 무력 동원을 합리화했다는 의심을 면할 수 없게됐다.
이번 전쟁의 결과로 미국의 패권은 전 세계적으로 확립됐다. 미국은 노린 것을 얻었다. 그러나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얼마 전엔 인접국인 파나마를 침공해 그 대통령을 붙잡아 자기 법정에 세운 나라다.
파나마 침공은 분쟁의 해결 수단으로 무력을 쓰지 않는다는 유엔 헌장의 정신과 국제법을 어긴 국제적 범죄 행위라고 보아도 큰 무리가 없다.
그 이전엔 월남전을 일으켰다. 월남전의 도화선이 된 통킹만 사건은 월맹의 도발이 아니라 미국이 계획한 각본에 의한 것임은 미국 자신이 공개한 국방부 문서에 명백하게 드러나 있다.
그런 나라가 중동의 어느 국가가 인접국을 점령한데 대해서 도덕적인 비난을 할 자격이 있을리 없다.
걸프전은 힘과 힘의 대결이며 큰 주먹의 관할권내에서 작은 주먹이 마음대로 세력 판도를 재편하는 것을 묵과하지 않는다는 실력과 의지를 보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약육강식의 국제 갈등을 선과 악의 전쟁인양 분장한 서방 언론의 목소리를 우리 언론이 그대로 옮긴 것은 남의 장단에 춤춘 것에 불과하다. 미국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을 지키는 패자라는 지적이다.
미국의 강력한 영향권 내에 있는 우리 나라는 그 비위를 거스르기 어려우니 전비를 부담하면서 미국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통일에 대비해서도 더욱 힘을 기르고 지혜롭게 행동해 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한반도의 통일은 동북아 세력 균형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 변화가 미국에 달갑지 않은 것일 때는 남북한의 의사가 합치된 경우에도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통일의 준비를 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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