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끊긴 결식아동 후원자(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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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서울 구로6동 동구로국민학교 박명재 교장(60)은 요즘 말못할 고민과 걱정에 싸여 있다.
1년 가까이 이학교 결식아동들에게 점심값을 대주던 「그분」이 두달이 넘도록 소식이 끊겨 어찌된 일인지 영문을 몰라 냉가슴을 앓고 있는 것이다.
『도움을 더 받고 싶어서는 물론 아닙니다. 그분께 안좋은 일이 생겼다면 이제 우리가 도와드려야할 때가 아닙니까.』
박교장이 「그분」을 접한 것은 지난해 3월중순.
교장실로 걸려온 뜻밖의 전화를 통해서였다.
조그만 사업을 한다는 그분은 점심을 거르는 어린이들을 돕고싶다며 그런 어린이들이 몇명이나 되느냐고 물었다.
박교장은 고맙다는 말도 잊은 채 누군지 알아보려고 꼬치꼬치 캐물었지만 끝내 『그것만은 묻지 말아달라』는 답변 뿐이었다.
통사정하다시피해서 겨우 알아낸 것은 「그분」역시 점심을 거르면서 학창시절을 보냈다는 정도였다.
며칠후 「그분」은 어디서 알아냈는지 27명분 한달급식대 67만5천원을 자신의 회사 경리직원 편에 보내왔다.
회사직원도 『누군지 밝히지 말라는 엄명을 받았다』고 했다.
그렇게 하기를 8개월여. 매달 말일께면 어김없이 돈을 보내왔다.
도움을 받는 어린이들이 「얻어먹는다」는 느낌을 갖지 않도록 해달라는 부탁을 몇번이고 받은지라 박교장도 그돈을 받을 때마다 몰래 학부형들을 불러 쌀값이나 찬값에 보태쓰라고 쥐어줬다.
그런데 돌연 지난 12월부터 「그분」의 손길이 끊긴 것이다.
『도움이 아쉬워서가 아니라 하도 고마워서….』끝내 목소리가 축축해진 박교장은 늦추위가 매섭게 휘몰아치는 교정을 돌아보며 『제발 그분한테 별일이 없었으면…』하고 되뇌고 있었다.<정태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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