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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싸고 미­소“불편한 관계”/탈냉전이후 다시 불화조짐(걸프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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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소 개입하면 그간 수고 허사/양국무기 「우열평가전」분석도
걸프전쟁 종식을 위해 평화안을 내놓은 소련에 대해 미국이 편안치 않은 느낌이다. 물론 미국과 소련 대변인들은 모스크바안에 대한 부시 미 대통령의 비판·거부에도 불구하고 양국 협력관계는 변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싱턴­모스크바 관계는 잠재적 불화조짐이 드러나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걸프전쟁의 종전협상을 둘러싸고 탈냉전을 선언했던 미소관계가 다시 악화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가 하면 걸프전쟁을 미소간의 대리전쟁으로 성격을 규정하기도 한다.
부시 대통령이 소련이 이라크에 제안한 평화안을 거부한 것도 안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이 지역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 증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같은 미국의 입장은 최근 워싱턴포스트지 사설 등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즉,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직후부터 지금까지 이번 전쟁을 미국의 관점에서 끌고 왔는데 이제 막바지 시점에 평화협상이라는 명목으로 소련의 개입을 허용한다면 지금까지 미국이 이 지역에 두었던 국가이익의 목표가 침해된다고 언론까지 대소 경고에 나섰다.
미국이 소련의 평화안을 거부한데는 이 전쟁이 소련의 중재로 마무리되어 사담 후세인이 살아 남을 경우 중동지역에 소­이라크축이 형성되어 전후 미국이 구상하고 있는 연합국중심의 판을 짜기가 어렵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정반대의 입장에 처해 있는 것이 소련이다.
이라크 제재에 대한 유엔결의과정 등에서 미국의 입장을 도왔던 소련은 군부등 내부로부터 전통적으로 소련의 입김이 강했던 이라크를 미국 영향력하에 내준다고 강한 반발을 받아왔다.
이러한 반발은 셰바르드나제가 외무장관에서 물러나고 베스 메르트니흐가 후임으로 들어서면서 구체화되어 소련의 독자적인 행동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부시가 소련의 평화안을 거부하자 베스메르트니흐 소 외무장관은 『그 안은 미국에 제안한 것이 아니라 이라크에 낸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걸프전쟁 현장에서도 미소간에 보이지 않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무기와 전술에 의존하는 연합국측과 소련의 무기와 전술을 사용하는 이라크가 교전함으로써 미소가 간접적으로 교전,대리전쟁을 치르고 있는 모양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앞으로 미소가 전쟁을 할 경우 어떤 상황으로 전개되는가를 걸프전쟁에서 보고 있는 셈이라고까지 평가하고 있다.
비록 양국은 냉전종식을 선언했다 하더라도 자신들이 개발한 무기와 전술의 우열이 판가름나는 전쟁인 관계로 은밀하게 상대방의 전력을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련도 첩보위성을 이 지역에 투입해 미국의 스마트폭탄·레이저유도폭탄 등 신무기의 성능과 일반전술·통신 등을 탐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역시 이라크가 도입한 소련의 전술 및 무기체계에 대한 평가를 놓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지금까지의 결과로 보면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라고 평가하고 있다.
우선 연합국의 전투기 손실이 0.2%로 미국이 당초 예상했던 손실률의 10분의 1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월남전 당시 위력을 발휘했던 소제 지대공미사일로 격추된 미군비행기가 한대도 없다는 것이다.
특히 토마호크 크루즈미사일·레이다에 포착이 안되는 스텔스F­117전폭기·패트리어트미사일 등은 미국 무기체계의 우월성을 완전히 입증했다는 것이다.
전술면에서도 소련의 야포중심 중앙집중식 지휘체계를 도입한 이라크가 「지상공중작전」개념을 이용한 미국에 일방적으로 밀렸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소련은 이번 전쟁을 미소 무기대리전으로 보기 보다는 무기시험장 정도로 평가해 이라크에서 운용된 전술이나 무기를 소련의 최대능력으로 평가하지 않고 있다.
미소가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경쟁과 갈등을 겪고 있으나 이것이 어느 수준으로까지 확대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미국으로서는 소련의 협조없이 걸프전을 마무리짓기가 어려운 입장이고 소련도 국내의 복잡한 상황때문에 미국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들 수 없는 형편이다.
부시 대통령이 소련의 안을 거부하면서도 소련의 협조에 감사한다는 말을 잊지 않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렇게 조심스러워진 미소의 관계는 이라크가 소련안을 받아들인다고 했을 경우 미국의 반응여하에 따라 분수령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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