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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자존심 갈등' 커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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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최근 잘못된 역사인식에서 오는 망언에서부터 우발적 사건까지 한국.중국.일본 간에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 우파지식인이 일제지배에 대한 망언을 일삼는가 하면 중국에선 한국.일본인을 노린 범죄도 적잖다. 중국인에 대한 한국 이민당국의 일부 과잉조치도 말썽거리다. 아시아를 리드하는 동북아 3국이 소모적인 갈등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 한.중 유치원 충돌 사건=중국 관영 매체인 인민일보의 인터넷사이트 인민망(人民網)은 6일 "난징(南京)의 바이궈수(柏果樹)유치원 사무실에서 지난 5일 오후 7~8명의 교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실습 여교사인 양류(楊柳.가명.21세)와 원장.담임교사가 한국인 학부모에게 무릎을 꿇었다"고 보도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3일 오후 터졌다. 중국 어린이가 "한국인 급우가 내 머리를 때렸다"고 이르자 楊교사는 "왜 다른 학생을 모욕하느냐"며 한국 어린이를 꾸짖었다. 이어"어느 손으로 때렸느냐"는 물음에 오른손을 내밀자 들고 있던 가위를 흔들며 "다음에 또 그러면 손을 잘라버리겠다"며 가위질하는 시늉을 했다.

그날 저녁 아들로부터 얘기를 들은 학부모는 즉각 유치원 원장을 찾아가 따졌다. 원장은 사태가 심상치 않자 정중한 사과와 함께 楊교사에게 정직(停職)조치를 내렸다. 학부모는 4, 5일에도 유치원을 찾아가 楊교사의 직접 사과와 해고를 요구했다고 인민망은 보도했다.

楊교사는 "학부모가 '무릎을 꿇어라'고 소리치자 원장이 강권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3분가량 무릎을 꿇었다"며 "인격을 침해당한 데 대해 법정 소송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楊교사는 유치원에서 쫓겨난 상태다.

그러나 학부모 입장은 다르다. "무릎을 꿇은 게 그렇게 큰일이냐. 어린 마음에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을지 생각해 봤느냐"는 것이다.

한편 중국의 네티즌들은 노골적으로 민족 감정에 치우치고 있다. "중국인의 자존심을 짓밟은 행위", "일본인에게 무릎 꿇던 한국인들의 습성이 중국으로 옮겨온 것", "한국인은 중국을 떠나라"는 수백통의 글이 잇따랐다.

◇ 일본의 망언과 중국 깎아내리기=요즘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도쿄도 지사 등 극우 정치인.학자 등의 망언과 관련한 서적.잡지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중국에 대해선 많은 언론이 가세해 평가절하가 한창이다.

민영방송 TBS는 지난 2일 저녁 '안전붕괴 스페셜-외국인 범죄 실태'란 기획 프로그램을 약 40분 동안 방송했다. 그런데 보도 내용은 일본에 체류 중인 중국인들에 의한 범죄뿐이었다. 마쓰자와 나리부미(松澤成文) 가나가와(神奈川)현 지사는 같은 날 총선거 지원 유세 도중 "중국 같은 곳에서 취학비자로 (일본에) 들어오고 있지만 모두 좀도둑"이라고 말했다.

◇ 중.일 섹스.망언 갈등=만주사변 72주년이던 지난 9월 18일을 이틀 앞둔 16일 일본인 관광객 3백80명이 주하이(珠海)의 한 호텔에서 집단매춘을 벌인 데 이어 지난달 29일 중국 산시성 시안(西安)의 시베이(西北)대 외국어학원에서 일본인 유학생들이 중국인들을 성(性)적으로 비하하는 춤을 추는 사건이 터졌다.

집단매춘에 대해선 일본정부는 진상조사를 공언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일본 언론.지식인 사회에서는 사건의 문제점을 고발하고 동북아 3국 화합을 위한 노력을 고취하는 움직임이 미약했다.

이 같은 일본 사회 분위기 탓인지 음란춤 사건이 또 터졌다. 학교 측에선 파문 당사자들을 퇴교시키고 중국 외교부도 "교육 제대로 시켜 유학 보내라"고 일본 정부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날렸지만 중국 네티즌들의 자존심은 이미 상처를 받았다. 아직도 인터넷 게시판에는 "파렴치한 일본인이 중국을 물들인다""섹스만 밝히는 일본인"등 거친 감정이 여전하다.

일본의 보수 정객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가 최근 중국의 유인 우주선 발사에 대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며 비아냥대 반일감정이 악화됐었다.

홍콩=이양수 특파원, 도쿄=오대영 특파원, 서울=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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