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에 누가 넘겼나" 입수과정 의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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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12시34분 사설 입시기관인 청솔학원 홈페이지에는 '긴급' 자가 붙은 글들이 떴다. '07 수능 언어 1등급 컷 표준(점수)…' '07 수능 과탐 1등급 컷' 등의 제목으로 모두 세 건이었다. '수능 최종 성적표 통지가 경기도, 경남, 대전 교육청에서 12일(화) 오전 11시부터 학교별로 이뤄진 가운데 언어 1등급 원점수는 95점, 표준점수 127점인 것으로 나타났다'는 내용이다. 이 정보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자료와 동일한 것이었다. 하지만 13일까지는 공개할 수 없는 자료들이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 10시에는 각 고교 3학년 부장교사들이 시.도 교육청에서 학생들의 개별성적과 전체 표준점수 및 도수분포 자료를 받아갔다. 교육청은 '13일까지 공개하지 말라'는 단서를 붙였다. 오전 11시에는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교육부 기자실에서 수능 성적 분포에 대해 브리핑을 했다. 역시 13일까지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였다.

◆ 폭주하는 인터넷 접속=이날 인터넷에선 청솔학원 자료의 진위 여부를 놓고 대혼란이 벌어졌다. 청솔학원 홈페이지에 수능 분포가 공개된 지 10분 만에 입시사이트 '오르비'의 자유게시판에 '지금 청솔에선…'이란 제목의 글이 게재됐다. 청솔학원이 공개한 수능 채점 결과를 누군가 올려놓은 것이다. 순식간에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의 접속이 폭주해 몇 시간 사이에 16만 명이 조회했다.

수험생들은 학교로부터 자기 점수도 통보받지 못했는데 사설 학원이 표준점수.원점수를 올려놓은 데 대해 어리둥절해했다. 오르비 사이트 게시판에는 '학원은 자료가 맞다고 하는데 사실이냐'는 물음에 '그걸 어떻게 믿느냐' '전화해 봤는데 맞다고 하더라'는 등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대부분 평균 조회 수 10만 건을 기록했다. 한국교육평가원의 홈페이지도 수험생들의 접속으로 여러 차례 다운됐다. 평가원 관계자는 "학원 자료가 맞느냐는 전화가 빗발쳤다"며 "정확한 내용을 알려줄 수 없어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청솔학원은 경기도.경남.대전 등의 고교에서는 수능 성적표가 12일 오전 11시부터 배포됐다고 주장했다. 이런 내용을 인터넷에서 읽은 이 지역 수험생들이 학교에 문의하는 전화도 많았다.

◆ 입수 과정 의문=청솔학원이 자료를 어떻게 입수했는지가 관건이다. 청솔학원은 지방의 학교로부터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지방 교육청과 학교는 펄쩍 뛰고 있다.

안양 지역의 경우 각 고교 3학년 부장교사들이 이날 오전 10시 안양교육청에서 수능 성적표와 성적 분석자료 책자(학교당 5권 정도)를 일괄적으로 받았다. P고 교사는 "교육청 장학사가 13일 오전 10시 이후 성적표를 배포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안양 B고 교감도 "교육청의 지시를 무시하고 사전에 성적표를 배포할 학교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수원 지역의 경우 각 학교 관계자들이 오전 11시 수원교육청에서 성적표를 동시에 받았다. S고 교사는 "교육청이 13일 성적표를 배포하라고 확인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교사가 교육청의 지시를 무시하고 자료를 곧바로 청솔학원에 넘겼을 가능성이 있다. 이날 오전10~11시 사이에 교사들이 교육청에서 자료를 받았고, 학원 홈페이지에 오른 것은 그로부터 1시간쯤 지난 뒤다.

다른 통로도 가능하다. 교육부나 한국교육평가원, 시.도 교육청에서 자료가 넘어갔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 관계자는 "아직까지 고교에서 자료를 넘겨 받은 흔적은 찾지 못했다"며 "학원.학교 간 유착 관계가 드러날 경우 징계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자녀가 수능시험을 봤다는 학부모 전명진(45.서울목동)씨는 "학원 홈페이지를 통해 수능 점수 분포를 확인해야 한다는 게 학부모의 입장에선 어이가 없다"며 "수능점수 관리가 어떻게 되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학부모 이진숙(46.인천시)씨는 "학원이 일선 학교는 물론 교육부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이번 기회에 어떤 과정으로 자료가 유출됐는지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