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 겹 옷 한 겹씩 벗으면 뮤지컬 배우된 것 같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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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앙드레김 패션쇼의 피날레는 잘 알려진 것처럼 '사랑해요' 장면이다. 두 사람의 모델이 이별 뒤 다시 만나 행복한 결혼식을 올리며 이마를 맞대는 장면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장면이 앙드레김 패션쇼의 대미를 장식한다면 모두 일곱 벌의 옷을 겹쳐 입는 '칠겹 의상'은 '하나의 옷'으로만 기억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앙드레김 패션의 대표격인 이 의상을 가장 많은 입은 사람은 톱 모델 이종희(32)씨. 이씨의 뒤를 잇는 이가 뽀모가에바 율라 알렉산드롭나(28.사진)다. 주민등록상 이름이 13자에 달하는 이 사람은 러시아 출신의 아줌마 모델. 패션쇼 리허설을 포함해 100번 이상 '칠겹 의상'을 입었단다. 그가 말하는 이 옷의 매력을 패션쇼 리허설 현장에서 들어봤다.

"패션쇼에서 칠겹옷을 처음 봤을 때부터 끌렸어요. 한 겹 한 겹 벗어젖히는 모습이 슬퍼보이기도 하고, 아무튼 꼭 입고 싶었어요." 그가 처음 칠겹 의상을 마주한 것은 1997년.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 출신의 그는 96년 지역 미인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미모의 모델로 러시아에서도 톱 모델로 활약했다.

"한국에 오자마자 앙드레김을 찾아 갔어요. 처음 본 디자이너인데도 마치 전생에 본 것처럼, '인연이다' 싶은 느낌이 있었죠." 앙드레김도 그가 마음에 들었는지 바로 패션쇼에 캐스팅했다.

올해로 그의 쇼에 선 지 10년째. 칠 겹 옷은 2001년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 무대에서 처음 입었다.

"옷을 입게 됐다고 했을 때 너무 기뻤어요. 지금도 무대에 설 때마다 감정을 더 잘 표현해 보려고 애써요." 그는 "이제 칠 겹 옷이 말하는 '한국 여인의 슬픔'에 대해 더 잘 이해한다"고 했다. 2004년 국내 한 방송사의 PD와 결혼해 그는 지금 '한국인 며느리'이기 때문이다. "칠겹 옷은 여러 가지를 말하죠. '여인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숙명'말이에요." 그는 "그런 운명을 하나씩 힘겹고 슬프게 벗어내고도 결국은 다시 끌고가야 한다는 걸 옷이 표현해 주는 것 같아요"(패션쇼에서 칠 겹 옷을 입은 모델은 옷을 한 겹씩 벗었다가 다시 하나씩 모아쥐고 천천히 뒤돌아 보며 사라진다). 그는 이 의상을 입고 무대에 설 때마다 자신이 "뮤지컬 배우인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는 것 말고는 뮤지컬과 다를 게 없죠. 옷이 분위기를 압도하고 제 손짓과 몸짓, 눈빛이 분위기를 더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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