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운명의 힘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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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땅에서 디자이너로 산다는 것. 물정 모르거나 무모하기 짝이없는 도전이다. 더구나 새내기라면 말해 무엇하랴. 큰 맘 먹고 좌판 벌인 컬렉션장의 썰렁함…, 바이어는 간데없고, 해외시장의 문은 바늘구멍이다. 백화점에 매장을 내는 일은 언감생심이다. 외국 브랜드에는 한없이 너그럽지만 정작 '토종'에겐 각박하기 그지없다. 이게 현실이다. 하지만 꿈꾸는 자에게 불가능,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여기 두사람이 있다. 이들의 꿈을 향한 도전에 '마침표'는 없다. '거기 산이 있어' 끝없이 오르는 알피니스트처럼….

프리미엄 조세경 기자


열정의 힘으로…
조소과를 졸업하고 미술공부 더 하겠다고 날아간 프랑스. 파리의 낭만은 김재현을 디자이너로 변신시켜 되돌려 보냈다.
그는 패션 회사에 취직했고, 얼마 안 가 자신의 브랜드 '재인 에 알리스'를 냈다. 이때부터 그의 구절양장(九折羊腸)같은 험난한 인생여정이 시작됐다.
명함엔 디자이너라고 박았지만 상황은 그를 안주하도록 놔두지 않았다. 시장조사, 디자인, 원단 구입, 샘플제작은 물론 판매와 재고까지 감당해야 했다.
타고난 심마안에 현장감각이 가미된 덕일까. 그의 다지안은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퍼져갔다. 특히 '팬츠는 김재현'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자뎅드 슈에뜨는 그의 두 번째 브랜드. 허리선이 낮아 히프를 예뻐 보이게 하는 팬츠의 미덕은 여전했다. 안감과 단추 하나하나 명품 외국브랜드 못지않은 정성과 노력이 들어갔다.
그는 최근에야 첫 컬렉션을 마쳤다.
"그동안 자뎅 드 슈에뜨를 좋아했던 사람들과 기자들만 모인 자리였어요. 자뎅 드 슈에뜨는 이런 분위기에서 이렇게 입어야 한다는 걸 보여주려 했죠."
컬렉션 장소로 '정원'을 선택,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도록 배려했다.
어떤 트렌드에도 빛바래지 않는 기본 디자인 깔끔하게 떨어지는 팬츠. 그리고 김재현만의 감각이 돋보이는 디테일의 의상이 무대를 수놓았다.
첫삽은 늦게 떳지만 앞으로 일년에 한 번씩은 이벤트를 열 계획이다. 제품 홍보도 홍보지만 고객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디자인은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심지어 고객이 요구한 디자인이 실제 옷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힘드시죠?" 기자가 무심코 던진 말이 그에게 비수로 꽂혔나 보다.
"참 아픕니다. 패션 하나하나에 정말 디자이너의 숨결과 혼이 배어 있죠. 내 목숨과도 같은 작품이 금방 복제돼 시장에 깔릴 땐 뭐라 말할 수 없는 낭패감이 밀려오곤 합니다."
그럼에도 예의 낙천적 미소는 여전했다. 디자이너 '김재현의 힘'이 어디서 오는 지 알듯 하다.

프리미엄 이성근 인턴 기자


운명의 힘으로…
송자인vs디자인. 이름부터 이 둘의 만남은 운명처럼 보인다. 그는 태생부터 '모태 디자이너'다. 엄마가 바로 디자이너 김동순이다.
이제 서른 남짓의 디자이너. 그의 첫 인상은 그가 만드는 옷처럼 부드러웠다. 데뷔때 그는 머리를 하나로 묶은 단아한 모습이었다. 옷도 마찬가지. 부드럽고 수줍은 소녀들이 컬렉션 무대를 채웠다.
컬렉션을 시작한 지 세 번째 해. 올해는 소녀들 대신 소년들이 무대 위를 활보했다. 그도 머리를 바짝 잘랐다.
"원래의 나로 돌아간 것 같아요. 제가 머리를 자르자 사람들이 '그래 그게 너야'라고 말하더군요."
조각을 공부하다 디자이너로 방향을 튼 건 엄마의 영향이 컸다. 순수미술을 하겠다고 '패션'을 조롱했던 당돌한 여대생은 엄마의 우산살 아래 차곡차곡 디자이너 수업을 받고, 오늘에 이르렀다.
첫 컬렉션은 그를 김동순의 딸에서 당당히 디자이너 송자인으로 각인시켰다. 난해하지도, 보여지기 위한 옷도 아니었다. 과정없이 기름기 쏙 뺀 담백한 옷에 기자와 패션 매니어들은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새별의 앞날을 주목했다.
그의 컨셉트는 여전히 '소녀'다. 하지만 그저 그런 소녀스러움이 아니다. 그의 소녀는 불안한자아니고, 때로는 남성적이다. '섹시함'도 마찬가지. 송자인표 섹시는 드러냄이 아니다. 깨끗함과 신비로움이다. 누구에게나 보물은 있다. 청순함과 섹시함이다. 어떻게 나타내는가, 디자이너의 능력이다.
얼마 전 도산공원 근처에 자신의 부티크를 열었다. 나무가 있는 공간이다. 데뷔 3년차 디자이너 꿈이 무르익어갈 보금자리다.
자신의 이름을 단 브랜드를 갖는 것. 그 브랜드가 대중과 소통하는 것. 지구마을 곳곳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것.
그가 오늘도 옷과 함께 꿈을 디자인한다.

프리미엄 최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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