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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사치는 '아버지 콤플렉스' 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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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외국 지도자들의 심리와 성격을 분석하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인성.정치 행동 분석 센터' 창설자인 정치 심리학자 제럴드 포스트(72.사진) 조지 워싱턴대 교수는 10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지난달 29일 대북 사치품 금수조치를 취한 것은 김정일의 주의를 환기하는 경고 전화(a wake up call)"라며 이같이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정일의 성격을 분석한다면.

"이데올로기의 측면에서 그는 아버지 김일성의 포로다. 북한에서 김일성은 신(神)이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의 자연스러운 후계자임을 선전하는 데 주력해 왔다. 하지만 아들이 아버지의 '그런 큰 신발'을 신는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김정일은 자신이 아버지와 다르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행동을 과장한다. 자기를 거인으로, 메시아로 보이려 한다. 호화와 사치는 그런 과대망상에 확신을 주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행동의 이면엔 불안과 의심이 자리 잡고 있다. 늘 아버지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내면의 불안이 공격적 행동으로 나타날 가능성은 없나.

"그는 압박을 받으면 더 반항적이 된다. 자신이 강하다는 걸 과시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친 것은 아니다.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생존이므로 상당히 신중한 편이다. 그에겐 미국이 자신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처럼 제거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그 때문에 핵 개발을 한 것으로 보이나 그걸 쓰면 미국의 보복을 초래, 자신에게 파멸이 올 것이라는 걸 잘 안다고 본다."

-북한 핵을 폐기할 가장 좋은 방법은.

"당근과 채찍의 조합이다. 북한은 체제 보장과 경제원조를 간절히 바란다. 6자회담을 하든, 북.미 직접대화를 하든 핵을 포기하면 그들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끔 해야 한다. 동시에 핵을 없애지 않으면 완전히 고립될 것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도 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제재에 미온적인 러시아와 중국이 미국에 힘을 보태는 게 중요하다. 한국도 이 점을 잘 인식해야 한다."

포스트 교수는 북한 핵실험 직후 영국의 일간 텔레그래프와 한 인터뷰에서 "거물은 거물 장난감을 가져야 한다는 게 김정일의 심리"라며 "그런 그에게 한국의 햇볕정책은 나약한 것으로 비쳐 무시당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2004년 펴낸 '위험한 세계의 지도자와 추종자들'이란 저서에서도 "김정일이 아버지의 그늘에 덮여 있다"며 2세 콤플렉스와 주민에겐 냉혹한 악의적 과대망상에 대해 설명했다. 이 책에서 그는 몰락한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에 대해선 이렇게 적었다.

"권력을 위협하는 사람들을 가차없이 제거했고, 비판을 불충과 반역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서방세계의 주장대로 미친 사람은 아니다. 충동적이지 않으며, 참을성도 많다. 그러나 세계관은 좁고 왜곡돼 있다. 중동 바깥으로 나간 게 두 번(모스크바와 파리)밖에 없었던 데다 아첨배에게 둘러싸여 있었던 탓이다."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해선 이렇게 썼다. "동정심이라곤 없다. 부하들에게 (테러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죽을 것을 지시하면서 자신은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그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 하미다는 가족에게 추방당해 노예 취급을 당했다. 빈라덴은 노예의 아들로 불렸다. 그게 가족과의 인연을 끊는 등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 제럴드 포스트 교수=예일대 의대와 하버드 의대에서 정신의학을 전공하고 CIA에서 21년간 외국 지도자들의 정치 행태와 심리 상태를 분석했다. 1986년부터 조지 워싱턴대에서 78년 9월 중동평화 협상의 전기를 마련한 지미 카터 당시 미 대통령과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의 회담을 앞두고 베긴과 사다트의 성격과 행태를 자세히 적은 '캠프 데이비드 프로파일(인물자료)'을 만들었으며, 이듬해 유공훈장을 받았다.

◆ CIA 인성.정치 행동 분석 센터=정치학.사회학.심리학.문화인류학.정신의학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외국 지도자들의 성장과정.성격.정치성향 등을 분석해 백악관에 제공한다. 정상들의 전기, 연설 내용과 장면, 각종 언론보도를 수집해 분석하고 외교관 등 그들을 만난 사람들을 광범위하게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자료를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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