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문창극칼럼

뻐꾸기 둥지가 된 나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386세대가 중심이 된 일심회라는 간첩조직이 적발됐다. 이들은 북한에서 남파한 간첩이 아니었다. 남쪽에서 대학까지 나온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북한을 '조국'이라고 불렀다. 남쪽은 '적'이라고 믿었다. 최근 사법시험 합격자들의 면접 결과는 더욱 놀랍다. "남북 화해 시대에 북한이 남침할 가능성이 없으니 군대는 필요 없다" " 한국의 주적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일본" 이라고 대답했다. 6.25가 통일전쟁이라던 강모 교수를 국가보안법으로 기소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도 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법을 관장하는 법관과 변호사가 된다. 뻐꾸기 생각이 났다. 뻐꾸기는 제 둥지가 없다. 뱁새 둥지에다 알을 낳는다. 어미 뱁새는 뻐꾸기 알이 제 알인 줄 알고 품는다. 알에서 깨어난 뻐꾸기 새끼는 옆에 있는 뱁새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 떨어뜨린다. 뻐꾸기가 제 새끼인 줄 알고 뱁새는 열심히 먹이를 물어다 먹인다. 뱁새 몸집의 서너 배가 된 뻐꾸기는 어느 날 훌훌 둥지를 떠난다. 불쌍한 뱁새….

전교조 교사가 중학생들을 데리고 빨치산 추모대회에 참석했다. '남녘 통일애국열사 추모제'다. 50년 전의 빨치산들이 모여 "올해는 반드시 미군 없는 나라를 만들자"고 전의를 불태웠다. 그 학교의 한 학생은 인터넷 카페에 "미국넘들아~ 평화롭게 살려는 우리를 건드리지 말라…. 한반도에서 미국이 일으키려는 전쟁을 온몸으로 막아내겠다"는 글을 올렸다. 이런 행사가 벌써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들은 우리 아이들을 빨치산으로 만들고 있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비서관.보좌관 중에 민노당 당적을 가진 사람이 30여 명에 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앞에서 말한 일심회라는 간첩조직에는 민노당 사무부총장을 비롯해 서울시 대의원이 포함돼 있었다. 이런 민노당 당원들이 한나라당 정책을 열심히 생산해 내고 있다. 한나라당은 언론자유를 억압하는 신문법을 통과시켰고, 사학을 전교조에 넘겨 줄 사학법도 손을 들어 주었다. 우리는 과연 우리 둥지를 지키고 있는 건가. 정말로 내 새끼를 기르고 있는 건가.

민주사회와 전체주의사회는 새끼 기르는 방식이 다르다. 민주사회는 개인의 합리적 판단을 존중하는 성숙한 시민을 만드는 것을 교육목표로 삼고 있다. 반면 전체주의 교육은 그 사회가 요구하는 자동인형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이념을 주입하여 세뇌시키는 것이다. 공산체제나 나치체제가 유지된 이유도 바로 이 세뇌 때문이었다. 전교조가 문제 되는 것은 어린 학생들에게 특정한 이념을 주입하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을 세뇌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관용을 가르친다. 소수의견도 존중토록 한다.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반면 전체주의는 그것이 정치이념이든 종교든 공존을 거부한다. 자신의 주장과 사상만이 옳다고 가르친다. 사상을 위해서라면 자살테러까지도 고무한다. 문제는 이렇게 상반된 사상이 대결할 때 어떻게 되느냐다. 한쪽은 관용을, 다른 쪽은 고집을 가르친다면 결국은 누가 이기게 될까. 민주주의의 장점들은 이렇게 전체주의를 만났을 때 약점이 되어 버릴 수 있다. 유럽 사회가 이슬람 원리주의에 결국은 손을 들게 될 것이라는 경고도 있다. 바로 이러한 민주주의의 본질과 한계 때문이다.

남북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관용을, 평화공존을, 상호존중을 내세운다. 반면 북쪽은 자기 것을 고집하고 있다. 이 둘의 관계가 결국은 어떻게 될까. 우리는 남쪽의 일방적인 퍼주기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상호주의를 주장한다. 그러나 물질적 퍼주기보다 정신적 퍼주기가 더 큰 문제인 것이다. 공존은 피차 관용할 때 이루어진다. 한쪽만의 관용은 결국 관용하는 쪽의 굴복으로 끝나기 쉽다. 햇볕정책의 허점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둥지를 지키려면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관용과 공존의 한계를 아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사상이나 주장까지 용납하는 것이 관용이 아니다. 이 알 저 알 다 품어 기르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다. 우리는 뱁새 둥지가 돼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라는 알을 밀어내 떨어뜨리는 뻐꾸기 새끼를 기를 수는 없다. 이런 각성이 없다면 이 나라는 결국 뻐꾸기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문창극 주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