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평등…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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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성수의 실전논술
이번에는 고생하는 학생들에게 한 숨 돌릴 시간도 주고, 중요한 기출 논제도 좀 더 쉽게 배워볼 겸 주요 고전과 사상의 대가들을 되살려 직접 얘기를 듣는 형식으로 꾸몄다. 주제는 2007학년도 고려대 수시 1학기에 나왔던 '사회적 정의-자유와 평등에 관련하여'다.

▶ 사회자 : 지난번 고대의 시험은 앞으로 시행될 통합논술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그 시험에 출제됐던 사상과 논제에 대해 저자에게 직접 들어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여기 고명한 철학자 두 분을 모셨다.
공리주의를 집대성한 존 스튜어트 밀, '정의론'의 저자인 존 롤스 선생이다. 우선 밀 선생께서 '공리주의'에 대해 짧게 언급해주시고, 이어 롤스 선생이 '정의론'에 대해 설명해달라.

▶ J. S. 밀 : 내가 공리주의에 감동받았던 것은 16살 되던 해였다. 벤담 선생의 '공리원칙'이야말로 내 젊은 시절을 결정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이란 그 얼마나 아름다운 명제인가. 현실의 문제를 공리주의만큼 합리적으로 해결해줄 수 있는 원칙이 또 어디 있겠나.
아담 스미스 이래 무절제한 자유와 경쟁은 사회적 불평등과 빈부격차를 낳았다. 공리주의는 바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했던 것이다.

▶ 존 롤스 : 물론 공리주의가 어느 정도 사회적 평등과 정치·사회와 관련된 여러 제도를 민주화하는데 기여했다는 점에는 나도 동의한다. 또한 정의로운 합의란 부자나 귀족 같은 어느 한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이익, 즉 '공리(功利)'와 연결될 때만 가능하다는 공리주의의 이상 역시 참으로 훌륭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그러한 공리주의 원칙은 최대 다수의 행복 뒤에 숨겨진 소수자의 슬픔을 간과하고 있다. 힘없는 소수의 약자가 빠져 있다면 그것을 진정 완전한 공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의 '정의론'은 바로 그 약자들에게 관심을 두고 있다.

▶ J. S. 밀 : 많은 분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는데, 공리주의가 마치 무슨 전체주의와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하지만 공리주의와 전체주의는 다르다. 공리주의는 외부의 누군가가 특정한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공리주의는 보편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에서 말한다. 다시 말해 "나의 선택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경우, 나는 개개인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의 합이 최대인 길을 선택해야한다"는 도덕적 격률 아래서 개인들이 스스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공리주의를 목적론적 윤리의 한 형태로 이해하기도 하지 않는가.

▶ 존 롤스 : 하지만 어쩐지 내게는 그 말씀이 그저 플라톤식의 이상주의로 들린다. 철인이나 성인이 아니고야 어떻게 그리 쉽게 자기를 희생하겠는가. 물론 당장은 손해가 생겨도 타인의 이익을 선호하는 것이 오히려 나에게 더 이익이 되기에 기꺼이 자기를 희생한다고 말하는 공리주의자들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모든 행위가 반드시 어떤 이익, 즉 공리와 관련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자식을 위해 부모가 희생하는 게, 꼭 무슨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일까.
오히려 사회적 약자를 인정하지 않는 공리주의식 평등주의가 더 문제다. 최대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그것이 노예제라도 기꺼이 인정하겠는가.
아니 그렇다. 어쩌면 이 세상엔 불가피하게 불평등이 존재해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와 같은 불평등은 어디까지나 최소의 수혜자, 가장 힘없는 사람의 이익이 극대화될 경우에만 허용돼야 한다. 또한 공정하고 균등한 기회가 누구에게나 열려있을 경우에만 인정돼야 한다.
'정의'는 바로 그 불평등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라는 문제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다수와 함께 할 수 없는 힘없는 소수가 이 세상에는 늘 존재해왔다.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회가 진정 정의로운 사회 아닐까.

▶ J. S. 밀 : 그래요. 하지만 롤스 선생 말대로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인위적인 보호정책을 편다고 쳐봐요. 혹시 그게 되레 공정한 원칙이나 규칙을 위협하진 않겠는가. 게다가 이 사회는 수많은 가치와 이념이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혀있는데, 현실적으로 도대체 그 많은 사람의 입장을 어떻게 일일이 다 수용할 수 있겠는가.

▶ 사회자 : 토론이 다소 격앙된 것 같다. 두 분이 조금 흥분하신 듯하다. 이쯤 중재를 해야 할 것 같다. 저의 짧은 소견으로 볼 땐, 두 분 모두 자유와 평등을 어떻게 정의롭게 조정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 것 같다. 두 분의 의견이 공통된 지점도 있고, 다른 부분도 있는 것 같다.
가령 개인에게 주어지는 자유의 양과 평등의 권리라는 두 부분만을 놓고 보면, 공리주의는 개인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평등주의에 가까워 보인다. 반대로 '정의론'은 어느 한 개개인의 욕망과 권리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공리주의가 최대 다수라는 수량적인 평등에 치중하다 보니 정치·사회적으로 힘없는 소수의 약자가 소외된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점에서 효용과 이익중심의 사고를 탈피하고 그 속에서 어떻게든 불평등을 조정해보려는 '정의론'은 오늘날 복지사회의 모습과 유사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수험생 여러분도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 있다. 동일한 저자의 동일한 작품이라 하더라도 어느 부분을 초점화해 제시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내용으로 읽힐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배경지식을 외울 것이 아니라, 각각의 제시문을 통해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듯 하다.

또박또박국어논술학원 고등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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