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있는 곳에 내가 있다”(세계의 사회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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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걸프전 특종 CNN 아네트기자/월남등 23년 전장누벼/본사근무 요청하자 회사까지 옮겨
『마치 미 독립기념일의 불꽃놀이 같다.』
개전일성을 띄웠던 미 CNN­TV의 전쟁취재 전문기자 피터 아네트(56)는 전쟁발발 첫 보도를 불꽃놀이에 비유했었다. 아네트 기자는 전쟁 첫 보도로 세계의 스타가 된데 이어 지난달 28일 걸프전 발발후 처음으로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과의 단독 인터뷰에 성공,다시 한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후세인의 충실한 나팔수」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아네트 기자는 『그래도 뉴스를 끌어내는 편이 더 낫다』고 믿고 있다.
개전 첫날 라시드호텔에서 한방을 쓰던 동료기자 버나드 쇼와 존 홀리먼 조차 급히 호텔 지하대피소로 대피한 뒤에도 아네트 기자는 혼자 호텔방에 남아 호텔창문을 통해 다국적군의 공습상황을 생생히 보도하고 있었다.
이때 이라크군인이 갑자기 방으로 뛰어들어와 총을 겨누며 즉시 지하대피소로 대피하라고 다그쳤다.
아네트 기자는 침착한 목소리로 『나는 베트남전을 취재하면서 지겨울 정도로 방공호에 들어가 봤다. 그런데 지금 또 들어가라면 나보고 미쳐버리라는 말이냐』고 일갈,이 병사를 쫓아보냈다.
지금도 서방기자로서는 유일하게 바그다드에 남아 취재활동을 하고 있는 아네트기자는 두렵지 않느냐는 동료들의 질문에 대해 『20년이 넘는 기자생활동안 이보다 더 위험한 경우를 숱하게 겪어왔다』고 말하고 『그저 또 하나의 경험에 불과할뿐』이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아네트는 지난 60년 대학을 졸업하고 조국인 뉴질랜드를 떠났다.
청년 아네트는 방콕으로 가 조그만 영자신문사에 취직,언론인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그후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서 「비엔티안 월드」라는 신문사를 창간했으나 기자라고는 자기혼자뿐인 초라한 규모였다.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해 자기방을 친구들의 「공동주택」으로 내놓다시피한 아네트는 돈이 궁해지자 AP·UPI·로이터 등 세계 유수통신사의 스트링어(촉탁기자) 일을 해야했다.
이 일이 결정적인 계기가 돼 그의 화려하고도 고난에 찬 종군기자 생활이 시작됐다.
세계 굴지의 미 AP통신사가 아네트를 정식 특파원으로 채용,막 시작된 베트남 전쟁에 투입했다.
그후 종전이 될때까지 모두 13년동안 그는 병사들과 함께 베트남 정글에서 살다시피했다.
아네트기자는 베트남전쟁 취재로 미국 기자로서 최고의 영예인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아네트는 75년 미군이 사이공에서 마지막으로 철수하면서 본사로부터 철수명령을 받았으나 이를 거부,월맹군이 사이공을 점령하는 모습을 현장에서 보도했다.
아네트는 사이공 주재시절 베트남인인 니나와 결혼했다. 아내 니나와 아들 앤드류군(26),딸 엘사양(23)은 예루살렘에 살고 있다.
아네트는 세계취재여행으로 몇년동안이나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아네트는 베트남전쟁이 끝난 뒤에도 본사근무를 맡아달라는 AP통신사측의 요구를 거절하고 81년부터 CNN으로 자리를 옮겨 국제전쟁 취재를 담당,세계의 전쟁터를 헤매고 다니고 있다.
아네트는 당시 신생 CNN사로부터 취약한 국제전쟁 분야를 전담해 달라는 제의를 받고 이를 흔쾌히 수락,니카라과·엘살바도르·모스크바·앙골라·베이루트 등 전쟁이 있는 곳이면 빠지지 않고 나타났다.
「전쟁이 있는 곳에 아네트가 있다」는 말은 아네트에 대해 전설처럼 전해지는 얘기다.<진세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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