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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 가계부? 달력 안에 있소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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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가계부를 쓰겠다'는 결심은 주부들의 연말 또는 새해맞이 단골 메뉴다. 하지만 작심삼일로 끝난 게 어디 한두 해 일이던가. 초 남편들의 금연 결심처럼. 사실 매일매일 지출 내역을 자세히 써야 하는 가계부는 번거롭고 부담스럽다. 돈의 흐름을 파악하고 재테크 전략을 세울 수 있는 가계부의 이점을 알면서도 쓰지 못하는 이유다. 쉽고 간단한 가계부는 없을까. '귀차니스트' 주부도 도전해 볼 만한 가계부를 찾아봤다.

# 한눈으로 보는 '달력' 가계부

'기록광'을 자처하는 15년차 주부 김수진(43)씨. 매일 식단을 짜 적어놓고, 냉동실 음식 목록표도 만들어 붙이는 성격이다 보니 결혼하자마자 가계부부터 챙긴 건 당연했다.

처음엔 은행에서 받아온 정통 가계부를 사용했다. "그땐 장을 보고 나면 콩나물 값 얼마, 우유 값 얼마 등을 일일이 적었어요. 다달이 식비.광열비.교통비 등으로 분류해 통계도 내 보고요. 그런데 그런 통계가 큰 의미가 없더라고요. 겨울에 난방비 많이 나오고, 명절 낀 달에 식비 많이 나오는 건 해마다 똑같은데 줄일 방법이 별로 없잖아요. 또 콩나물 값 100원 싸다고 콩나물만 따로 사러 다른 시장에 갈 수도 없고…."

'기록을 위한 기록'에 따른 번거로움도 줄이고 지출 내역을 큰 단위로 나눠 한눈에 보기 위해 김씨는 5년 전부터 탁상용 달력을 가계부로 쓰고 있다. 기록 방법은 간단하다. 그날 그날 돈 쓴 장소(또는 용도)와 쓴 액수를 '롯데마트 38760원''세탁소 8000원''찜질방 20000원' 으로 적어넣는 식이다. 신용카드로 쓴 돈엔 밑줄을 그어 현금 지출과 구별한다. (사진(上))

김씨가 마지노선으로 정해놓은 카드 사용액은 월 100만원. 생활비 400만원 중 관리비.보험료.전화요금 등 자동이체로 빠져나가는 지출과 아이들 과외비같이 꼭 현금으로 지출해야 하는 것을 계산하고 남은 액수다. 달력 가계부는 한 달 동안의 카드 사용액을 한눈에 볼 수 있어 결제기준일에 맞춰 소비를 통제하기 쉽다.

달력 가계부의 좋은 점은 또 있다. 아이들 과외비 계산에 편리하다. "학원비야 매달 내는 날이 정해져 있지만 개인 과외비는 언제 내야 하는지 헷갈릴 때가 많아요. 성악은 4회 레슨 뒤에, 피아노는 8회 레슨 뒤에 선생님한테 돈을 드리는데 매달 수강료 내는 날이 달라지거든요. 그래서 아이들 수업이 있는 날 달력에 조그맣게 '성악②'(수강료 낸 뒤 두 번째 수업이라는 뜻) 식으로 적어놓으니 언제 돈을 드려야 하는지 금방 알 수 있죠."

계좌이체를 하거나, 현금지급기에서 돈을 뽑은 내역도 따로 표시한다. 또 매일매일 지갑 속에 남아 있는 현금 액수도 달력 안에 써 넣는다. 액수 앞에 '∴'표시를 해 지출과 구별한다. 김씨의 경우 수입을 쓰는 원칙은 정해두지 않았다. 남편이 주는 생활비가 수입의 전부라 따로 표시할 필요가 없단다.

"매일 저녁 가계부를 쓰는데 1분도 안 걸려요. 현금 지출 액수하고 남아 있는 돈하고 맞춰 보고, 영수증은 바로바로 버리죠. 1000원 단위까지만 계산하고 그날그날 남은 동전은 저금통에 넣는데, 석 달에 한 번 헐어보면 10만원이 넘을 때도 있어요. 제 보너스인 셈이에요."

# 저절로 기록되는 '인터넷'가계부

맞벌이 주부 홍현정(34)씨는 인터넷 가계부 '머니플랜'(사진(下))을 사용한다. "신용카드 지출이나 계좌이체 같은 돈의 움직임이 자동으로 가계부에 기록되니까 정말 편해요. 내 지갑 안에 있는 현금 지출 내역만 따로 쓰면 되거든요."

솔직히 처음엔 사용하기 번거롭다는 생각도 들었다. 통장과 신용카드의 정보를 인터넷가계부에 입력해야 이용 내역이 자동으로 가계부로 옮겨지기 때문이다. 통장의 경우 계좌번호.비밀번호.주민등록번호만 입력하면 됐지만(인증서가 있으면 인증서 비밀번호로 등록이 가능하다), 신용카드는 해당 카드회사의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한 뒤 회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했다. 카드의 경우 해당 카드 사이트에서 정보를 읽어 와야 하기 때문이다.

홍씨는 "등록은 복잡했지만 그 뒤론 자동으로 정리되는 게 너무 편리해 연간 이용료 3만3000원이 좀 비싸다 싶으면서도 계속 쓰게 된다"고 말했다. 신용카드 결제 내역을 인터넷 가계부를 통해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어 청구서를 받아보고 '내가 여기를 갔었나?'하며 기억을 더듬을 일도 없어졌다. 지출 내역을 항목별로 분류하기도 편하다. 은행이나 신용카드 사이트에서 가져오는 거래 내역에 '외식비''경조사비''교통비' 등 항목을 정해 붙여놓으면 월말.연말에 자동으로 통계까지 내주는 것. 또 금융상품 외 곗돈이나 전세보증금.차 가격 등을 등록해 두면 전체적인 자산관리도 가능하다.

"전 회사 컴퓨터에 가계부 프로그램을 저장해 두고 주로 회사에서 사용해요. 늘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니까 가계부 펼쳐보기 편하거든요."

글=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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