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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피로/걸프전선 “제3의 적”(지구촌화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공포 쌓여 무력→정신착란/화학전 위협에 불안 확산
걸프전쟁에 군대를 파견한 미국인들은 요즘 「정신적 부상」이라는 말에 익숙해지고 있다.
미국인들은 베트남전쟁후 참전군인들이 제대하면서 보였던 각종 정신질환과 이로 인한 사회문제를 이번 걸프전 이후 다시 겪게될 것이라는 우려속에 「정신적 부상」이라는 말이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정신적 부상」은 「전쟁피로」라고도 알려진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잔인한 살육현장을 경험하면서 극도의 생명위협을 느낀 병사들이 보이는 공포·무력증·정신착란 등의 정신이상질환을 가리키는 말이다.
「전쟁」하면 흔히 신체적 부상이나 사망 등만을 연상하게 되지만 이와 같은 전쟁피로는 전력을 소리없이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그 후유증이 몇년씩 지속된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피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더욱이 걸프전에 참전한 병사들은 생화학전에 대비,무거운 장비를 휴대하고 있기 때문에 정신질환이 발생할 위험성이 그만큼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무거운 장비는 임무수행을 더욱 어렵게 만들 뿐만 아니라 어깨를 두드리며 서로 따뜻한 격려의 말을 나누는 것조차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미 재향군인국의 정신과의사인 매튜 프리드먼박사는 『정신적 인내력에도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고 전제하고 『신체적으로 탈진한 사람이 몸을 편안히 쉬어야하듯 전쟁피로에 시달리는 병사들에겐 직무에서 완전히 벗어나 여유시간을 가질 수 있는 이른바 「타임아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같은 전쟁피로는 시체를 직접 목격하는등 어느 한가지의 「병인」에서 비롯될 수도 있고 전쟁이 오래 계속되면서 공포가 누적돼 나타날 수도 있다.
이스라엘 병사들의 전쟁스트레스를 오랫동안 연구했던 슬로모 브레즈니츠박사는 『무기의 살상력이 클수록,전투횟수가 많아질수록,부상자의 수가 늘어날수록 정신질환은 증가하게 된다』고 진단하고 현대전에 동원되는 첨단무기는 『그 자체가 이미 전쟁피로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전쟁피로의 조짐을 나타내는 초기증상은 무력감과 무관심이다.
자신이나 전우를 보호하는 「가장 기초적인 일」조차 해내지 못하거나 일상적인 일에서 어이없는 실수를 반복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병사들이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거나 가끔 『마음먹은 대로 손이 움직여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게 되면 전쟁피로의 초기증상이라고 판단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전쟁피로를 치료하는 방법은 즉시 충분한 수면과 휴식을 취하게 하고 따뜻한 차를 마시게 하는 것에서부터 야전병원으로 후송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정도에 따라 다양하다.
전쟁이 끝난 뒤에 비로소 나타나기 시작하는 장기후유증 문제도 심각하다.
미국의 경우도 장기후유증에 대한 대책은 전무한 실정이어서 이들이 고스란히 사회적 부담으로 남게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프리드먼박사는 『전장에서 귀국할 병사들의 정신상태를 치료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전쟁에 참가한 젊은이들이 조국을 위해 유익한 일을 했다는 자긍심을 갖게 하고 이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주는 것이 장기후유증 환자를 최소화하는 지름길이라는데 미국내 심리학자들 대부분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진세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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