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대통령이 임명해야 전문성 보장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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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FCC)는 특정 정당이 위원의 3분의 2 이상 차지하지 못하도록 법에 금지하고 있다. 방송이 선거 때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해서다. 한국의 방송위원회도 9명의 위원 중 6명은 국회가 뽑도록 하고 있다. 역시 정치적 중립성을 지킨다는 명분이다. 그렇게 뽑는데도 방송위원회는 끊임없이 정권의 편을 드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6일 입법예고된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법안은 경악할 만하다. 위원 5명을 모두 대통령이 뽑도록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위원회는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를 통합한 사상 최대 규모다. 대통령 혼자서 인사권을 휘두르며 이 위원회를 좌지우지하겠다는 것으로밖에 달리 해석할 도리가 없다.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 측은 "방통위원 선임을 국회에 맡기면 전문성을 보장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총리실은 "국민의 정치의식이 성숙해 과거와 같은 (중립성)문제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현실을 보자.

노무현 정부의 '낙하산 인사' '코드 인사' 논란은 지금도 계속 중이다. 정연주 KBS 사장이 노조원들의 반발을 피해 몰래 출근하는 해프닝도 벌어지고 있다.

이런 마당에 KBS의 이사를 추천하고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와 EBS 사장을 직접 임명하는 방통위 위원들, 그 위원들을 대통령이 모조리 임명한다는 것이다. 이런데도 방송 지휘부의 인사가 공정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국민들은 지난 탄핵사태 때 방송사들이 얼마나 편파.왜곡으로 가득찬 방송을 했는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이 KBS 정연주 사장의 연임을 강행하는 건 과거 탄핵 때의 보도에 대한 보은과 동시에 다음 대선 때의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 아니냐"라고 비난하고 있다. 여론의 비판이 거세자 방통위는 8일 "대통령이 위원 전체를 임명하는 조항을 재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방송과 통신은 미래 한국 사회의 중요한 성장 동력이자 국가경쟁력이다. 특정 정권의 소유물이 돼선 안 된다. 입만 열면 민주주의를 외치던 노무현 정부 아닌가. 방송의 독립성 확보가 진짜 민주주의다.

최현철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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