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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친척 오면 팔자 핀다" 북에 새 풍속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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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해외동포들의 방북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북한당국은 최근 7·7선언 이후 30여개월 동안 미국·소련·중국·일본·캐나다 등 해외에 거주하는 동포 5천여명이 북한을 방문했다고 밝힌바 있다. 그러나 우리측 집계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북한을 방문한 해외동포들 가운데 재외공관에 방북신고서를 접수한 동포는 모두 3백명이다. 이들은 북한에 두고 온 부모형제와 친지상봉, 북한당국의 초청에 의한 각종 행사 참가, 관광여행사업 등을 위해 방북했던 사람들이다. 방북해외동포· 국내외 방북인사들을 통해 해외동포들의 방북실태와 북한당국의 해외동포 정책 등을 알아본다. <김국후기자>

<방북실태>
북한당국이 이북출신 미주동포들을 중심으로 해외동포들에게 북한에 살고 있는 부모형제와 친지상봉을 주선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초부터.
그러나 해외동포들은 방북에 대한 신분보장 등의 제도적인 장치가 없는 데다 남한정부를 의식, 방북을 꺼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북한을 방문한 사람들은 한해에 30여명 정도뿐이었다.
이들도 일부 친북인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비밀리에 방북한 사람들이다. 이런 가운데 해외영주권자 및 장기체류가 허가된 한국여권소지자의 방북허용 등을 내용으로 한 88년7월7일 노태우대통령의 특별선언 이후부터 해외동포들의 방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외무부 집계에 따르면 7·7선언 이후부터 지난해 말까지 재외공관에 방북신고를 한 해외동포는 영주권자 2백10명, 시민권자 57명 등 3백50명에 이른다.
이들을 나라별로 보면 영주권자의 경우 미국이 2백50명으로 가장 많고, 일본 38명, 캐나다 6명 등 순이며 시민권자는 미국 10명, 캐나다 2명 등이다.
또 방문목적별로는 가족·친지방문이 2백83명으로 압도적이고 다음이 관광 15명, 행사참가 9명, 종교활동 7명, 비즈니스와 취재가 각각 3명, 기타 23명 등이다.
지난해 8월13일부터 17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범민족대회」 때 북한을 방문한 해외동포는 모두 6백30여명.
이들 중 대부분이 미국·소련·중국 등에서 살고 있는 동포들이며 이 대회의 참관단자격으로 북한당국의 초청을 받았거나 가족·친지방문, 관광여행 등을 목적으로 방북했다.

<단체방문에 주력>
북한은 과거 해외동포들에게 개별적으로 방북, 가족·친지들을 만나도록 했으나 90년부터 2월16일 김정일 비서생일·4월15일 김일성주석생일 등 각종 행사사절로 편입, 한꺼번에 초청해 단체방문토록 전환했다.
또 해외동포들이 극비리에 방북할 때만해도 북한의 가족을 평양의 호텔과 여관으로 불러 상봉케 했으나 1년 전부터는 해외동포들이 고향을 직접 방문케하고 있다.
특히 북한은 7·7선언 이후 해외동포들의 방북이 크게 늘어나자 이같은 분위기에 편승, 해외동포위원회까지 만들어 해외동포의 방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중앙과 지방의 행정기관 등을 동원해 이산가족상봉 등 해외동포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범민족대회」 때 북한을 방문한 홍성근씨(50·미 루이지애나) 는 북한당국의 주선으로 8월16일 평양 고려호텔에서 누나와 동생을 만난 후 곧바로 함흥으로 가 어머니(80) 를 만나는 등 방북 해외동포 상당수가 홍씨와 같은 절차와 방법으로 이산가족을 상봉했다.
이같은 방북해외동포들의 이산가족상봉 과정에서 일부 해외동포들은 큰 실망을 안게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북한에 살고 있는 가족들과 서신왕래때는 생존해 있다고 했던 가족과 친지가 막상 가보니 이미 사망,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는 일이 많기 때문.
「범민족대회」 때 방북한 김모씨(42·시카고)도 북한당국이 해외동포조직을 통해 자신의 어머니가 살아있다고 알려와 달려갔으나 북한에 살고있는 동생으로부터 어머니가 90년5월 78세로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듣고 크게 실망하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사전 서신역락 등도 없이 6·25때 월북했던 아들·딸을 만나기 위해 범민족대회 방북단에 끼어 평양을 찾아갔던 김모할머니 (78·서울출신· 미 거주) 는 북한당국이 손녀를 찾았다고 연락해와 손녀를 만나기 위해 선물을 가득 안고 남포까지 내려갔으나 손녀가 아닌 동명이인으로 확인돼 몸져눕기도 했다는 것.

<방북추진배경>
북한은 방북해외동포둘이 자신들의 가족·친지들에게 외화와 생필품 등을 무제한 주고 갈수있고 외화를 받은 가족·친지들이 백화점 등에서 생필품을 구할수 있도록 했다.
선전효과등 노려
이에따라 방북해외동포들은 북쪽 가족들에게 컬러TV·시계 양복지·재봉틀 등 한 살림을 장만해 주거나 5천∼1만달러씩의 생활비를 주고 온다는 것이다.
해의동포들이 북한가족들에게 1만달러를 주고 올 경우 이는 북한가족들에게는 월 80∼90원 (한화2만7천2백∼3만6백원) 씩 받는 노동자의 20년 노임에 해당되는 거액이다.
따라서 북한주민들 사이에서는 최근 『미주 동포가 찾아온 동무들은 팔자를 고친다』 는 말이 나돌 정도로 상봉이산가족 이웃을 부러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전문가들은 북한이 해외동포들의 방북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은 ▲주민들에게 「당 지도부의 배려 속에 반세기동안 꿈에도 잊지 못했던 가족들을 찾을 수 있었다」 는 정치적인 선전효과를 노리고 ▲가족을 만나러 온 해외동포들이 북한에 있는 친지들의 입장을 고려해 체제비판을 삼가고 있으며 ▲특히 주민들에게 경제적 혜택과 정부의 외화부족난에 크게 도움이 되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편 북한당국은 가족상봉을 위해 방북한 교포들에게 안내·관광·식사비 등 경비명목으로 2주동안 3백달러를 받고 있다.

<대교포정책>
북한은 해외동포의 발생을 ▲일제 식민지 ▲한국 정부우 이민정책 정치상황의 소산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해외동포 집단이 타의에 의해 조성된 소외· 불만계층으로 「감상적 민족통일관」 후반정부성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 대남혁명 수행에 동원 가능한 외적역(보조역량)으로 간주하고 있다.

<일·북여객선 협의>
북한은 63년 10월 국적법을 제정, 재일교포를 「조선공민」으로 공포하고 67년 11월 최고인민회의 제4기 선거에서 한덕수 조총련의장 등 조총련교포 7명을 최초로 대의원에 선출한데 이어 지난해 4월 제9기 대의원선거까지 매 기마다 조총련 간부 7명씩을 선출하는 등 「조총련의 내국인화」 정책을 취해왔다.
이어 72년12월 사회주의헌법 채택시 「전 해외동포권리옹호」 조항을 신설, 종래 재일교포 중심의 교포정책에서 전 해외동포에 대한 포괄적 귀속정책을 선언했다.
북한은 이에따라 86년9월 캐나다 거주 친북교포 최덕신씨 (전 천도교교령·86년 5월16일사망) 를 북한에 영주하도록 유인해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했으며 지난해 9월15일 재미 친북 핵심인사인 홍동근 목사를 교포로서는 최초로 김일성종합대 교수로 채용하는 등 파격적이고 과감한 교포유인정책을 쓰고있다.
정부당국에 따르면 특히 북한은 최근 동구변혁 및 소련과 중국의 대한 관계개선에 따른 교포들의 이탈방지를 위해 적극적인 대교포위무 및 결속을 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위해 북한은 최근 해외동포가정에 평양에서 발행하는 신문·잡지 등 각종 선전물을 투입하는 홍보전을 펴고 있기도 하다.
또 북한은 최근 조총련활동을 강화하고 경제난 타개를 의한 외화획득 차원에서 해외교포를 대상으로 채권발행 및 방북·자본투자유치·교포조직의 단일화 등에 주력하고 있다.
89년 8월 해외교포들을 대상으로 일화 3백억엔, 미화 1억달러의 채권 (재부증권)을 발행, 판매했고 88년 9월부터 11월 사이 재미교포 박경윤씨와 금강산국제무역개발회사·금강산 국제관광회사·고려상업은행 설립 등을 통한 합작사업을 시작한 것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밖에 북한은 최근 호텔시설을 확충하고 일·북한간 전세기 및 여객선운항 등 교포유치를 위한 새로운 투자사업을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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