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르는 북한 느긋한 일본/북한­일 평양서 1차 수교본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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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핵사찰­보상이 쟁점… 「상견례」로 끝날듯
북한과 일본간 제1차 국교정상화 본회담이 30일 이틀간 예정으로 평양에서 열렸다.
일본 정부로서는 국교가 없는 북한과 처음으로 정부간 교섭을 갖는다는데서 큰 의미를 부여하고는 있지만 북한이 세차례에 걸친 예비회담 과정에서 국교수립보다는 배상금에 더 관심이 크다는 점을 인식,될수 있으면 시간을 끌자는 느긋한 태도다.
이에 대조적으로 북한측은 『일본이 과거 36년간에 걸친 식민지배에다 45년간의 적대정책을 반성하려는 뜻을 선물(배상금)을 갖고 진사하러 정부대표단을 보냈다』는 대내적 선전효과를 고려,평양 개최를 일종의 페스티벌화 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한 외교소식통은 28일 북한이 1차 본회담만은 평양에서 열자고 계속 고집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풀이,알맹이 없는 「상견례」수준에서 이번 1차 본회담이 끝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처럼 처음부터 회담에 임하는 양측의 자세에 격차가 큰만큼 교섭과정은 난항을 겪게될 것이라는게 동경 외교가의 일반적 관측이다.
일본측 수석대표인 나카히라 노보루(중평립) 담당대사도 회담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안전보장과 한반도의 긴장완화라는 국제정세의 측면을 강조,북한이 핵사찰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배상·사죄 등 전후처리도 있을 수 없다는 연계론(패키지)을 언급했다.
이는 일본측이 북한의 핵보유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북한으로부터의 배상요구에 뜸을 들이는 한편 걸프전쟁 발발 이후 제3세계 무기보유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일본·미국내 여론을 무마한다는 뜻도 갖고 있다.
이와 관련,일본 외무성의 한 간부는 걸프전쟁을 보는 일본과 북한의 시각차도 회담진행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관측,새로운 마이너스 요인으로 주목했다.
걸프전쟁에 대해 북한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비판하면서도 『미제가 바그다드를 공격해 걸프전쟁을 도발했다(평양방송)』고 미국을 비난한바 있다.
90억달러와 자위대함정 등 추가지원을 계획하고 있는 일본측으로서는 이같은 북한의 견해에 동조할 수 없는 입장이다.
반면 북한은 4개 기본의제 가운데 「정상화의 기본문제」와 「경제문제」에 역점을 두어 「국제문제」는 끝까지 회피할 공산이 크다.
북한 지도부로서는 당장 발등의 불인 경제난국을 해결할 유일한 외화획득원인 일본으로부터의 배상 및 경제협력을 수교전이라도 받아내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북한 김일성 주석이 지난해 9월 가네마루(김환신) 일본 전 부총리와 회담 직후 『교섭을 6개월 이내로 타결하라』고 지시했다는 설이나 최근 김정일이 7명의 측근에게 『금년 11월중으로 매듭짓도록』지시했다는 일본측 정보도 같은 맥락에서 북한이 조기수교를 서두르고 있는 사정을 짐작케 한다.
북한이 일본과의 조기수교를 서두르는 대외적 명분은 지난해 9월 자민·사회당과 북한 노동당 사이에 맺은 「3당 공동선언」을 일본측이 당연히 준수해야 한다는 것과 일본이 미국의 간섭을 받지않고 처음으로 「자주외교」를 하는 시금석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북한간의 교섭과정을 보면 일본이 대 한반도 정책에서 「북한카드」를 얻는다는 이점을 고려,북한에 계속 추파를 던졌다는 측면도 있어 북한의 조기수교 요구를 과연 얼마나 물리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위성통신회선문제는 지난해 11월 협정이 맺어져 동경∼평양간 TV생중계 및 팩시밀리통신이 순조롭게 되었고 일본 여권의 「북한제외」조항도 오는 4월1일부터는 삭제된다. 이에 따라 니가타(신석)∼평양간 직행항공편 개설도 예정되고 있어 사실상 경제교류를 위한 환경정비는 어느 정도 이루어진 셈이다.
북한은 최근 조총련을 통해 민간차원에서 「일본과의 조기국교수립」캠페인을 벌이고 있는데 이른바 일본내 친북한 파이프라인 총동원의 인상이 짙어 이의 영향도 전혀 무시할 수는 없다.
한 조총련계 신문은 니가타현 지역에서 현단위로는 처음으로 초당파 현민회의가 지난 14일 결성,「3당공동선언에 따라 관계정상화를 조기에 실현하라」는 결의를 한 것을 비롯,전국 24개지역에서 50개가 넘는 시민단체가 국교정상화 조기실현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한 소식통은 이번 1차 본회담에 대비,일본측은 전인철 북측 수석대표등에게 현대 일본을 소개하는 비디오와 책자를 준비했다고 전했다. 이는 일본측으로서는 북한의 지도자에게 「일본입문」부터 교육시킬 심산으로 교섭타결에 그렇게 성급할 것이 없다는 일본측 태도를 상징하는 증표인 셈이다.<동경=방인철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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