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반미 감정에 무관심한 아랍국/대니얼 파이프스(초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패배에 대한 두려움에 “후세인 열정” 주춤
걸프전쟁이 발발하면 아랍인들의 반미 감정이 중동 여러나라를 휩쓸 것으로 예상했으나 그러한 일은 아직 현실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의 예상과는 달리 침묵하는 아랍민족주의에 대해 미국의 국제문제전문가 대니얼 파이프스는 최근 미 월스트리트 저널지의 기고문에서 『무관심의 확산과 힘에 대한 존경』때문으로 설명했다.
현재 필라델피아 외교정책연구원 원장으로 있는 대니얼 파이프스의 기고문을 요약해 싣는다.<편집자주>
걸퍼전쟁이 발발한지 1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중동의 아랍민족들은 사실상 조용한 상태다. 이같은 현상은 아마 걸프전 발발이래 가장 놀라운 사태전개라 할 수 있다.
단지 튀니지·리비아·수단·레바논,그리고 요라단같이 반미 활동을 허용하는 나라에서만 반전시위가 있었을 뿐이다.
전쟁이 시작되기전 서방사회에선 미국이 이라크에 대해 전쟁을 벌일 경우 가공할만한 정치적 대가를 치러야할 것이라는 점에 의견이 일치해 있었다. 중동제국도 반미주의의 폭발과 이에 따라 미국이 치러야하는 대가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켜보고 있었다.
걸프전이 발발하기 바로전 피터 포드와 조지 모페트는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지의 기고문에서 『이스라엘이 개입하지 않더라도 미국의 승리는 친미 아랍정권에 정치적인 급진주의 물결을 몰고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로빈 라이트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손익계산을 할때 미국에 불리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아랍인들이 후세인을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처럼 서방국가에 맞서 아랍민족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인물로 생각할 것으로 전망했던 것이다.
전쟁발발 직후 시리아에서 반정부·친후세인 시위가 발생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이어 많은 시위가 뒤따를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시위는 후세인 지지를 표명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그들의 이같은 침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들 전문가들은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변화를 간과하고 있었다.
첫번째는 무관심의 확산이다. 최근 수년동안 아랍인들은 다른나라와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서는 소요를 일으키지 않았다. 모로코·알제리·튀니지·이집트·수단·요르단 등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통화정책·정부보조금 삭감 등 국내문제에 주로 소요를 일으키는 것으로 증명됐다.
그동안 계속된 혼란속에서 실망에 지친 아랍인들은 이제 거리로 뛰쳐나갈 여력이 없다. 아랍인들은 67년 6일전쟁 이후 「신경마비증세」에 걸려있다. 이란혁명은 이라크와 이집트에서 회교원리주의자들을 봉기토록 하는데 실패했다.
샐먼 루시디의 『악마의 시』로 시위를 벌인 나라는 파키스탄과 인도로 실제 아랍어를 쓰는 국가는 하나도 없었다.
둘째는 오늘날 중동 각국 정권이 갖고 있는 절대권력 때문이다. 이라크와 같은 억압적 정치체제가 거의 모든 아랍국가에 존재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시위자들은 거리에까지 나설 수 없으며 현 정권의 권력기반을 약화시키거나 위협하는 일은 더욱 힘들다.
셋째는 승리자에 대한 존경이다.
후세인은 이스라엘의 절반을 멸망시키고 미군을 『피속에서 헤엄치게 할 것』이라며 자신만만한 태도로 전쟁에 돌입했다. 아랍인들은 이 말에 넋을 잃었다. 그래서 이라크에 대한 경제봉쇄,월등한 장비로 무장한 다국적군등 힘의 불균형을 망각한채 승리를 꿈꾸고 있었다.
한 요르단인은 미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지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내가 지금 죽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아랍측의 공격으로 텔아비브에서 희생자가 난 것을 나는 처음 보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눈앞에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미사일 공격은 지금까지 큰 희생을 가져오지 못했고 미군은 몇명만이 죽었을 뿐이다. 반대로 이라크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공습을 받고 있다. 중동은 힘에 대한 아낌없는 존경으로 특정지을 수 있다. 패배에 대한 두려움이 후세인에 대한 열정을 식게한 것이다.
이번 전쟁에서 다국적군이 승리하면 미국은 「몇달동안」 중동에서 비상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아랍인들은 미국인들에 대해 분노하기 보다 과거 어느때보다 외경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행동지침은 지난 82년처럼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당시 레바논에서 거둔 이스라엘의 성공은 미국정부로 하여금 레바논 정치를 재구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당시 레이건 행정부는 레바논문제는 무시한 채 복잡한 요르단강 서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레이건계획을 발표했다. 레이건계획의 결과는 아무것도 없었다. 레바논에서 변화를 가져올 기회는 지나가버렸다.
지난 2년동안의 외교성과로 보건대 불행하게도 부시 행정부는 전쟁이 끝나면 이스라엘과 아랍과의 갈등에 주의를 돌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못하다. 대신 걸프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미 국제문제 전문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