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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군 사령관은 외교관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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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앞으로 이라크에 파병될 한국군은 다국적군 사단을 지휘하면서 한 지역의 치안을 책임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이럴 경우 파병의 성패는 여러 나라 군인들로 이뤄진 다국적군을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인으로는 처음 2002년 1월부터 키프로스 주둔 유엔 다국적 평화유지군 사령관을 맡고 있는 황진하(57) 중장을 현지에서 만나 영국.아르헨티나.헝가리.슬로바키아군으로 이뤄진 다국적군을 지휘한 경험을 들었다. 황 중장은 육사 25기로 합참 군사협력과장, 국방부 정책기획차장, 합참 지휘통제통신참모부장 등을 지냈다.

-이곳 유엔평화유지군의 임무는.

"남북 키프로스 사이의 추가적인 무력 충돌을 막기 위해 정전협정 준수 여부를 감시하고 통일을 위한 양국의 관계개선을 돕고 있다."

-이곳의 유엔 다국적군 활동을 평가한다면.

"한마디로 잘 돌아간다. 지난 2년 간 남북 간 총격전이 한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특히 군을 지휘할 수 있도록 유엔이 권위를 확실히 세워준다. 유엔안보리는 6개월마다 활동지침을 하달한다. 각국의 군인들과 대표들은 나의 개인적인 명령이 아닌 유엔의 지침을 따르는 것이다. 유엔의 권위가 내가 단신으로 이곳에서 사령관직을 수행할 수 있는 바탕이다."

-이곳에서 다국적군을 운영하는 가장 큰 노하우는.

"가장 중요한 것이 책임 분담이다. 키프로스에선 아르헨티나군에 동부, 영국군에 수도 니코시아를 포함한 중부, 헝가리군과 슬로바키아군에 서부를 맡기고 있다. 담당지역의 경계는 도로를 예로 들면, 중간선인지 좌측 또는 우측 인도인지까지 세세히 명시해 놓고 있을 정도다. 서부를 두 나라가 맡고 있지만 이 두나라끼리도 담당구역의 경계를 명확히 하고 있다. 또 지휘를 맡은 사령부와 예하 각국 부대와의 책임과 권한도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국의 군대나 담당지역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각국의 책임이다. 지휘를 담당하는 국가라도 다른 예하 파병국 군대의 임무를 감독할 뿐이지 세세한 군사작전 지시까지 내릴 수는 없다. 또 각국 군대에서 발생하는 비군사적 문제들은 자국법에 따라 처리하도록 맡긴다."

-다국적군 지휘관으로서 가장 어려운 점은.

"각 파병국의 문화나 전통,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소한 것도 한가지 해결책이나 방안으로는 안된다는 점이 가장 어렵다. 사소한 것을 결정할 때도 내 주장을 내세워서는 안된다. 일방적인 명령은 더욱 안된다. 회의를 해도 먼저 각국의 얘기를 우선 다 듣고 방향은 제시하되 방법을 명령해서는 안된다. '잘못됐다'고 직설적으로 말하면 안된다. 모욕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이라크에서 다국적군을 지휘하게 될 경우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할까.

"목표를 확실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라크 내 전투나 내전 발생 방지, 경제재건 등 이라크 상황에 맞는 목표를 정해야 한다. 단순히 '치안유지'를 위해 간다고 모호하게 말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목표가 확실해야 이라크인들에게 주둔 이유를 설득할 수 있고 향후 불필요한 충돌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라크 파병이 결정된 현단계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향후 활동에 대해 이라크인들에게 선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라크 상황이 어려운 만큼 가기 전부터 좋은 인상을 심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군 및 다국적군이 이라크인들과 충돌이 생길 경우에는.

"현지인과 문제가 생길 경우 지휘부는 중립적 입장에 서야 한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냉각기를 두고 모든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자리에서 해결해야 한다."

-만약 한국이 이라크 주둔 다국적군사단의 지휘를 맡을 경우 한국 지휘관에게 줄 충고는.

"외국에서 활동하는 다국적군의 사령관은 군지휘관이기 이전에 외교관이 되어야 한다. 특히 현지의 이라크 종교.부족.경찰 지도자들에게 긴밀한 협조를 구해야 한다."

니코시아=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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