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신년사로 본 올해 북한의 전략 일 전문가 기고|한국양보 노려 유연한 접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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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북한은 올해 남북관계 개선에 전례 없이 적극적인 자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고집해온 주장에 작은 양보를 보임으로써 남한으로부터 보다 큰 양보를 얻어내려 할 것이다. 일본내 남한문제 전문가인 이즈미 하지메 교수(정강현립대)는 앞의 내용을 골자로한「올해 북한의 변화」에 대한 원고를 중앙일보사에 보내 왔다. 다음은 그 요지.
지금 북한이 처한 입장은 매우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년간 국제정세가 급진전, 특히 소련 등 사희주의 국가들의 자세가 크게 바뀌어「탈사회 주의화」움직임이 세계적 범위에서 급속히 진행됐다.
더욱이 사회주의국가들의 변화에 호응, 한국의「북방외교」가 성과를 거두고 있다. 북한이 소련 및 동구제국을 중요한 경제적 공급자로 삼을 수 없게된 것만으로도 이미 타격은 크고,.항간에 부진한 것으로 알려진 경제상대를 감안한다면 평양의 고뇌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러한 심각한 환경하에서 북한은 어떤 활로를 열어나가려고 하는 것일까. 지난 1월1일의 김일성 주석「신년사」를 보면 올해 북한은 전례 없이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 보다 큰 한국측의 양보를 끌어내고자 거듭 노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점은 금년 신년사가 통일문제에 전체의 60%이상의 비중을 할애했다는 사실 하나를 보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다.
통일문제에 관한 부분은 종래의 신년사와는 분명히 다른 내용을 포함한 것이었다. 즉「남조선인민의 통일을 지향한 투쟁」의 평가보다도 오히려「민족의 단결」에 중점을 두는 자세를 강조하고 또 연방제에 기초한 통일방도에 관해서는 한국제안과의 접점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유연성을 보이는 등 남북대화에 대한 전향적인 자세를 강하게 품기고 있다.
작년 1년간 북한은 소련·동구의 변혁물결에 대해 집안단속에 신경을 써 국내에 그 여파가 미치지 않도록 여러「예방조치」를 취해왔다고 할 수 있다. 조선노동당의 지도력을 강화하고 경제의「자력갱생」을 강조하면서 체제안정을 꾀하고 최고인민회의를 예정보다 빨리 개최한 것도 모두 예방조치의 구체적인 표현이었다. 남북고위급회담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또 일본과 극적인 관계개선을 단행한 것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평양은「사회주의권 붕괴」가 초래한「나쁜 영향」을 미연에 막을 수 있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생각된다. 이를 전제로 해 올해는 남북관계의 전진을 지향한다는 것이 김일성 주석의 구상이 아닐까 한다.
물론 북한이 상정하는「남북관계의 진전」이란 것은「한국의 대폭적인 양보에 의한 진전」을 의미할 것이다.
다만 한국의 대양보를 얻어내려면 북한 스스로도 작은 양보를 적극적으로 제시해 나가겠다는 자세를 올해 계속 취할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점은 올 신년사에서도 충분히 읽어낼 수 있다.
우선 북한은 한국과의「불가침선언」채택을 실현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이것은 뒤집어보면 남북고위급회담에 적극적으로 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불가침선언이 채택되면 다음 단계로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구체성을 띠고 전망될 수 있을 것이다.
정상회담을 실현시키려면 먼저 남북이 통일의 형태와 과정에 관해 큰 틀에서 합의에 이를 필요가 있다.
현재 남북 양자의 통일방안에 간격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차이는 결코 메우기 어려울 정도의 것은 아니다. 특히 금년신년사에서 김일성 주석은 종래의 연방제통일방안의 내용에 중대한 변화를 가해 한국측 제안과의 사이에 접점을 가질 수 있는 방향으로 발을 내디뎠다.
즉 서로 다른 두 제도와 두 정부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데로부터 출발하여 그 위에 하나의 통일적인 민족국가를 세운다는「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체도, 두개 정부에 기초한 연방제방식의 통일」을 실현하자고 김주석은 말했다.
「두개 정부가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점이 이 제안의 가장 주목해야 할 내용이다.
왜냐하면 북한의 이 제안은 통일의 중간단계로 두개의 주권국가가 공존하는「남북연합」구축을 지향하는 한국의 통일방안과도 충분히 상통할 수 있다고 인정되기 때문이다.
또 김일성 주석은『북과 남의 서로다른 제도를 하나의 제도로 만드는 문제는 앞으로 천천히 순탄하게 풀어나가도록 후대들에게 맡겨도 된다』고 언명했다.
이 점 또한 남북연합을 거쳐 최종적으로는「하나의 제도」에 기초한「통일민주공화국」 의 실현을 지향하는 한국의 통일방안과 부분적으로 합치되는 것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김주석은 연방제통일을「점차적」인 방법으로 완성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는 점도 처음으로 밝혔다.
즉『우리는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에 대한 민족적 합의를 보다 쉽게 이루기 위하여 잠정적으로는 연방공화국의 지역자치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며 장차로는 중앙정부의 기능을 더욱 더 높여나가는 방향에서 연방제 통일을 점차적으로 완성하는 문제도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당분간 지역자치정부에 많은 권한을 가지게 한다면 이것 또한 한국이 구상하는 남북연합 하에서의 남북한 양정권의 모습과 대단히 가깝다.
이번 신년사에 나타난 내용은 북한의 양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국의 보다 큰 양보를 끌어내기 위한「양보」였다고 생각된다.
현재 북한은「공은 한국측의 코트안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김일성 신년사를 통해 북한의 공이 남한측에 넘어간 것이다. 다음은 한국이「불가침선언」의 채택에 동의하고 연방제통일을 받아들이는 것을 기대하는 단계라는 자세다.
그러나 평양은「기다리는 자세」만으로 일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북한국교정상화교섭을 순조롭게 진전시키고 또 미국과 관계개선의 계기를 찾아내기 위해서도 적극적으로 남북관계의 화해에 임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해 북한은 한국의 양보를 기대하면서 남북대화를 계속 전개하고 이 과정에서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지향하는 신중한 자세를 대외에 보인다는 것에 최대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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