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서 야심찬 '무대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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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친 머리, 트레이닝복의 헐렁한 옷차림. 언뜻 봐도 오십이란 나이가 좀체 믿기지 않았다. 수줍음도 많았다. "술.담배 못해요. 아직 결혼도 못했고…. 철이 덜 든 거죠."재일교포 극작가 정의신(49)씨. 외모는 옆집 형처럼 너무나 평범하지만, 현재 일본 문화계에서 그의 위치는 확고하다. 1993년 일본 연극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기시다 희곡상을 받았다. 지난해엔 최양일 감독이 연출한 영화 '피와 뼈'로 일본 아카데미상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재일교포로 일본 문화계 주류에서 이만한 평가를 받기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번엔 또 다른 실험을 위해 그가 내한했다. 직접 쓰고 연출한 '행인두부의 마음'이란 연극을 6일부터 사흘간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일본 배우들로 무대에 올리는 것과 동시에, 똑같은 작품을 한국의 '극단 76'이 8일부터 대학로 스튜디오 76 극장에서 한국 연출가와 한국 배우들로 공연하는 것. 한 작품을 한.일 양국 극단이 동시에 공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행인두부란 요구르트나 푸딩처럼 일본에선 흔한 디저트입니다. 7년간 함께 살아온 부부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혼을 하기로 마음먹고 케이크 대신 행인두부를 먹으며 그간의 일을 서로 얘기하는 내용이지요. 행인두부란 인스턴트 식품처럼 과연 사랑에도 유통 기한을 있는 것일까 관객에게 묻는 작품이라고 해야 할까요."

정씨는 재일교포 2.5세라 할 수 있다. 충남 논산이 고향인 아버지는 15세 때 일본으로 건너왔고, 어머니는 일본에서 태어난 교포 2세였다. 그는 재일교포들이 모여 사는 오사카 인근 히지메라는 곳에서 자랐다.

"어릴 때 동네엔 퀴퀴한 술냄새로 진동을 했죠. 취해 쓰러지고 토하고…. 그땐 이해 못 했죠. 어른들이 왜 저렇게 사는지."

그의 집은 가난했다. 부모님은 폐품을 수집하는 고물상이었고, 형제는 다섯 명이나 돼 식탁도 없이 서서 밥을 먹곤 했다. 어려운 현실은 대신 그를 문화라는 환상 속으로 쑥 밀어넣었다. 아버지가 가져 오는 헌 책이나 잡지 등을 닥치는 대로 읽었고, 어머니가 청소하는 영화관을 자기 집처럼 드나들곤 했다.

"밤에 잘 때 이불 덮고 동생에게 늘 옛날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 주었어요. 귀신이나 도깨비가 주 소재였는데, 동생은 '무서워, 하지마'하면서도 귀를 쫑긋 세우곤 했어요. 현재의 이야기꾼이 될 수 있었던 밑바탕이었죠."

그는 자신을 '경계인'이라고 규정지었다. "한.일 어느 한쪽에도 정체성을 둘 수 없었기 때문인지 자연스레 '마이너리티'에 관심이 갔죠. 제 작품에 주로 불법입국자.하층민.동성애자 등이 등장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듯합니다. 옛날엔 그런 불우함 혹은 무소속이 너무 싫었는데 어느 순간 그걸 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더군요. 그때부터 제 어깨도 한층 가벼워졌죠." 그는 일본 평단으로부터 "처절한 현실을 가장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작가"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한국 서울 예술의전당 20주년, 일본 신국립극장 10주년인 2008년에 양측을 번갈아가며 공연하는 작품을 쓸 예정이다. "재일교포가 운영하는 고깃집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단다. 당연히 한일 양국 배우가 동시에 무대에 오를 터. 이젠 '경계인'을 넘어 양국 문화를 잇는 '매개인'이자 '통합인'이라는 임무가 그에게 지워진 듯 싶다. 02-742-9881

글=최민우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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