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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뿐한 착륙 … 강풍에도 흔들림 적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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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격납고 문을 밀쳤다. 색도 고운 '하얀 반딧불' 한 마리가 날렵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지난달 30일 오후 충남 태안의 한서대 비행장. '반디호'의 둥지다. '반디'란 이름은 반딧불처럼 환하게 빛나 대한민국 항공산업을 이끌겠다는 뜻에서 붙여졌다. 길이 6.6m에 키 2.2m로 생각보다 아담했다. 드디어 이륙 시간. 어른 4명이 반디호를 가볍게 밀더니 격납고에서 꺼냈다.

이날 비행은 16번째 '시험비행'이었다. 파일럿인 한서대 박수복(45) 교수를 따라 조종석 옆에 앉았다. 복잡한 계기판과 전자장비가 가득했다. 박 교수는 "조종간이 막대가 아니고 자동차 핸들처럼 생겨 더 편하다"고 설명했다. '브레이크, 연료 밸브, 스로틀…'. 20여 개 부품을 하나하나 점검한 박 교수가 출발선에 섰다.

활주로를 박찬 반디호는 레이싱카처럼 하늘을 갈랐다. '어~'하는 사이 논과 밭, 바다가 쉭쉭 스쳐 지나갔다. '위이잉' 엔진소리도 듣기에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박 교수는 "310마력짜리 엔진을 몸체 뒤에 넣어 소음을 줄이고 추진 효율도 높였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충남 태안의 한서대 비행장에 반디호의 영웅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반디호 개발을 총지휘한 항공우주연구원 안석민 박사, 시험비행 등을 총괄한 항우연 이장연 항공체계실장, 반디호의 공인 파일럿인 박수복 한서대 교수. 사진 왼쪽 상단은 반디호 초도비행을 성공시켰으나 보라호 추락으로 숨진 항공대 황명신(左).은희봉 교수.


박 교수가 선회 비행을 위해 조종간을 움직였다. 뱅크각(날개 기울기)을 30도 기울였다. 그런데 몸이 거의 드러누운 느낌이 들며 추락할 것 같았다. 그러나 반디호는 유연하게 하늘 길을 감아 돌았다. 박 교수는 "오늘 강풍 때문에 비행하기가 만만치 않다"고 걱정했다. 그렇지만 요란한 흔들림은 느껴지지 않았다. 기름 한번 넣으면 1850㎞까지 비행할 수 있다니 마음만 먹으면 제주도도 지척이다.

20여 분 창공을 휘젓고 착륙할 때가 됐다. 고도를 낮춰 활주로에 다가서자 바람 때문인지 기체가 조금 거칠게 흔들렸다. 순간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접이식 바퀴를 내리자 언제 땅에 닿았는지도 느끼지 못하게 사뿐히 내려앉았다. 이날 반디호에 뒤이어 세스나가 여러 대 날았다. 하지만 훨씬 굼떠 보였다. 반디호 개발 총책임자인 항공우주연구원 안석민(49) 박사는 "세스나가 반디호를 제대로 못 쫓아간다"고 자랑했다.

지난 3월 미국 워싱턴 인근의 경쟁 비행에서 반디호가 경쟁 기종인 벨로시티를 보기 좋게 누른 게 우연이 아니었다. 반디호는 최대 중량을 초과하는 1.5t 짐을 싣고도 고도 6000m까지 오르는 과제를 거뜬히 수행해 냈다. 이날 쾌거가 미국 프락시 에이비에이션사의 반디호 구매 계약으로 이어졌다.

이런 영광은 숱한 고개를 넘으면서 움겨쥔 것이다. 2004년 여름 항공대 황명신.은희봉 교수의 추락 사망사고로 반디호 시험비행에 나설 조종사를 구하지 못할 때 용감하게 나선 박 교수는 "걱정보다 새 비행기를 조종한다는 설렘이 더 컸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박 교수는 20여 년 전 미국에서 '비행 면허'를 따 교관생활을 해온 베테랑 조종사다.

기계와 씨름한 엔지니어들이 수출 전선을 뚫는 것도 문제였다. 연구팀은 비행 전시회가 열리는 곳이면 반디호를 들고 나가 이름을 알렸다. 미국인 탐험가 거스 매클라우드는 미국 비행기 전시회에 나왔던 반디호를 보고 2004년 1월 자청해 반디호로 남.북극을 경유한 세계일주에 나섰다.

안 박사는 "혼다가 소형 제트기 사업에 뛰어드는 등 외국에선 이미 '에어 택시'시대가 시작됐다"며 "민간 기업들이 더 눈을 돌리면 우리도 항공을 훌륭한 산업으로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세계 소형기 시장은 연간 5000대 규모. 특히 비행 면허를 가진 사람만 60만 명에 이르는 미국에서 70% 정도가 팔린다.

태안=김준술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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