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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시바우 '반미 예방 외교' 분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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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의 분주한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다. 외교 현안에 대한 의견 표명이 잦고, 정치권.사회단체 접촉도 활발하다. 외교가에서는 한.미 관계의 관리를 위해 적극적 '대사외교'를 펼치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일각에선 "내정간섭"이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 뉴라이트와의 회동=버시바우 대사는 5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중도보수를 표방하는 이른바 '뉴라이트' 진영의 핵심 인물들과 조찬간담회를 열었다. 이석연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대표,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 김영호(성신여대 교수) 뉴라이트 싱크넷 운영위원장 등 10여 명이 모였다.

정부 비판적 성향이 강한 학자.단체대표와 미국 대사가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언론의 관심이 많았지만 모임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주최 측은 "미 대사관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버시바우 대사는 미국이 북핵 문제 해결에 상당히 노력하고 있다는 점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조성환 경기대 교수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와 대북 대응 문제 등 외교.안보 현안이 토론에서 주로 다뤄졌으며, 정계개편이나 대통령 선거 등의 정치적 이슈는 거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 분주한 행보=버시바우 대사는 지난달 29일 중국에서 북.미 회담이 열린 뒤 3~4일 간격으로 외교부를 방문해 핵심 당국자들을 만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강연과 정치인 면담에도 적극적이다. 대학과 시민단체의 초청 강연은 매달 3~4차례에 이른다. 강연에서는 '미국은 한국의 전략적 동반자'라는 점을 강조한다. 최근엔 정치인과의 회동이 많아졌다. 지난달 손학규 전 경기지사,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김종필 전 국무총리를 잇따라 만났다.

이에 대해 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 미주연구부장)교수는 "대북 제재,FTA 등 한.미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사안들이 반미 정서로 연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예방외교'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은 시작일 뿐 여야 대선 후보들이 가시화되면 정치권의 의견을 본국에 전달하고 미국의 입장을 설명하는 일이 더욱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미국은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 사건'과 대선이 맞물려 반미 정서가 확산된 2002년 주한 미국 대사관이 상황 관리를 잘못했다는 점을 뼈아프게 여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 "내정간섭" 논란=지난달 1일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미국 대사가 공개적인 발언을 통해 우리에게 압력을 가하는 게 아닌가 하는 오해를 자아내고 있다. 적절치 않다"고 일침을 가했다. 버시바우 대사가 강연에서 정부에 개성공단 사업 재검토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참여 확대를 촉구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었다. 열린우리당 이인영 의원은 "과도한 정치적 개입"이라고 공개 비판했다.

버시바우 대사는 주러시아 대사를 지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도 가까운 사이다. 그가 주한 대사로 발령났을 때 "껄끄러워진 한.미 관계를 적극적으로 관리하라"는 뜻으로 거물급 대사를 보낸 것으로 해석됐다. 따라서 외교가에서는 그가 계속 현안에 대해 의견을 분명히 밝히고, 유력 정치인과도 꾸준히 만날 것으로 보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버시바우 대사는 자신이 한.미 갈등의 완충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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