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의조기유학돋보기] 한국서 배운 영어 안 통하는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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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일상생활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단어가 엄청나게 많고 같은 것을 지칭하는 말도 우리와 전혀 다른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었다. 내 차의 배터리가 방전됐을 때의 일이다. 다른 차와 케이블로 연결해 충전하려는데, 하필 깜깜한 밤이어서 어디가 플러스극이고 마이너스극인지 보이지가 않았다. 할 수 없이 콜 센터에 전화를 걸어 플러스극과 마이너스극이 어디 있는지 물어봤다. 그런데 아무리 얘기해도 내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한 시간은 떠들었는지 진이 빠질 때쯤 됐을 때 그 미국인이 질문하는 것을 듣고 나는 주저앉을 뻔했다.

"You mean positive or negative?"

발음도 우리가 배우고 또 알고 있던 것들과 너무나 다르다. 수퍼라는 말도 없다. Super Market은 수우퍼마켓이라고 해야 맞다. 맨해튼(Manhattan)이 아니고 맨과 만의 중간발음으로 시작해 하~튼으로 끝나야 알아듣는다.

하다 못해 영어 글씨체도 다르다. 아이들이 학교에 며칠 다니더니 선생님이 영어를 이상하게 써 못 알아보겠다고 했다. "내용을 모르니까 못 알아보는 거지 이상하게 쓰긴…." 그렇게만 생각했었는데 아이들 학습지(Work Sheet)에 적혀 있는 선생님의 글씨를 보고 깜짝 놀랐다. 중학교 때 배운 이후에 거의 20년 만에 보는 필기체였던 것이다. 아이들은 한국에서 모두 인쇄체(print)만 배우고 썼기 때문에 필기체로 쓰인 영어는 또 다른 외국어였다.

미국인들은 공식적.사무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편지 같은 사적인 글들을 대부분 필기체로 쓴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필기체로 쓰라고 강요하는데 초등학교 3학년부터는 필기체로 쓰지 않으면 점수를 주지 않을 정도였다. 하는 수 없이 처음 몇 달간 아이들에게 필기체 연습을 시켰지만 결국 지금까지도 완전하게 쓰지 못한다. 물론 영어를 배우러 미국에 간 것이지만, 한국에서 20년이 넘게 배운 영어가 미국에서 안 통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알았다. 우리 가족의 미국생활이 얼마나 험난할지를….

김희경'죽도 밥도 안 된 조기 유학' 저자·브레인컴퍼니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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