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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경제 급한불끄기 바쁘다/로가초프차관 한국 왜 왔나(뉴스싱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식량·생필품 부족에 위기 고조/북한·중국 설득 담보 지원검토
이고르 로가초프 소련 외무차관의 급작스런 방한 이유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소련측은 지난해 12월31일 제1차 한소 정책협의회를 갖자고 제의해온지 1주일도 안돼 대표단을 직접 파견했기 때문이다.
외무부는 소련측이 이처럼 신속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내심 놀라면서 소련측의 진의파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외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우선 소련측의 가장 큰 관심사는 긴급 경제지원요구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련은 현재 심각한 식량·소비재난을 겪고 있으며 3월이 최대의 고비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말하자면 경제개혁으로 야기된 소련판 「보릿고개」이며 자칫하면 폭동으로 이어질 조짐마저 보이고 있는 위기를 넘겨야 할 형편이라는 것이 서방연구기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이같은 경제난은 각 민족·공화국들의 분리독립 움직임과 맞물려 소련 지도부의 최대고민으로 부각됐고 심지어 권력투쟁의 핵심적인 주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 고비를 잘 못넘기면 고르바초프의 계속 집권여부와 관계없이 소련은 보수화로 회귀하거나 다시 국가체제가 전제화되리라는 전망도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지난해말 10억달러의 식량원조를 약속했으며 독일등 서유럽도 10억달러 규모이상의 소비재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유럽의 소비재 지원자금이 대부분 중장기금융이라 화급한 사정을 당장 해소시켜주지 못한다는데 소련의 고민이 있을 것이라고 정부의 한 관계자는 설명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따라서 소련은 치약·치솔·비누·화장지·의류 등 긴급 소비재의 연불수출을 조기에 해줄 것을 우리측에 강도높게 요구하리라는게 대체적인 분석이라고 말했다.
물론 소련측이 이같은 요구를 아무런 반대급부없이 하지는 않으리라는 것 또한 상식이다.
우선 긴급 경제지원요청이 핵심적인 이유이면서도 정책협의회의 형식을 빌려 외무차관을 파견한 것부터가 예사로운 것은 아니다.
더구나 그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친서를 노태우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다시말해 소련측은 긴급경제지원 요청과 함께 남북한 관계 및 한중관계의 발전에 소련측이 적극 기여하겠다는 약속도 할 것으로 보인다.
외무부의 한 관계자는 소련측의 노력가운데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남북한 동시방문,남북 정상회담주선 및 우리의 유엔가입에 대한 중국측의 거부권 불행사를 유도하는 내용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로가초프 차관일행이 우리나라방문을 마치고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어서 경제협력 대신 한­중 수교에 상응한 기여를 할 의향을 비춘 것이 아닌가 보여진다.
로가초프 차관은 6일 김포공항에 도착,『이번 한소 정책협의회에서는 긴박한 국제·지역정세를 포함,광범위한 양국간 협력방안을 논의하게 될 것』이라면서 자신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특사자격임을 강조했다.
다시 말해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한반도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나선 것임을 간접 시사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정부는 우선 소련측의 경제지원 요청에는 가급적 호의적으로 대처하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이번 정책협의회를 두고 경제협력에 중점을 둔 관측이 지배적이지만 외무차관이 수석대표로 있는 회의에서 경제문제가 주가 될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우리측은 회의에서 가급적 양국간 광범위한 협력방안을 균형있게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따라서 이번 협의에서 어떤 특정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차원보다 양국의 협력을 보다 긴밀히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데 중점을 두려워하고 있다.
특히 남북한 관계발전에 소련측의 협력을 유도하기 위해 우리의 통일정책을 집중설명할 것이라고 외무부는 밝히고 있다.
그같은 노력의 일환으로 정부는 우선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와 한반도의 비핵화주장에 대한 소련측의 지지를 철회해 달라고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주한미군의 성격이 단순히 북한의 겨냥한 것이 아니라 동북아 힘의 균형을 위한 역할도 있다는 측면과 비핵화가 가져올 힘의 공백은 이 지역의 안정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을 집중 설득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들 문제를 대소 관계강화의 첫 단계로 삼으려는 것은 최근 한소 수교 이후 주한미군 존재에 대한 국내의 회의적 시각도 고려한 것이라고 한 관계자는 설명했다.
우리외교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안보를 담보해주고 있는 미국에 두어야함에도 최근 그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점차 약화되지 않느냐는 걱정때문이다.
로가초프 차관의 방한을 기점으로 한소 및 남북한 관계 등 동북아의 국제정치기류는 긴박한 흐름을 보일 것임에 틀림없으며 우리의 고민과 가능성도 함께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외교의 한걸음 한걸음이 더욱 소중해지는 시점이다.<이재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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