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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 『중앙 문예』 희곡 부문|희곡 『잃어버린 사람들』 조인란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25일 화이트 크리스마스! 그날 저녁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절친한 친구와 잔을 기울였다. 그는 자신을 희생시켜 인류를 구원하고자 했던 한 성인을 위하여, 나는 자조적인 분위기에 젖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나의 작품 뭉치를 떠올리며…. 그러면서도 그 다음날 나는 추운 날씨를 핑계삼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후 늦게야 당선소식을 전해주는 목소리는 상당히 점잖았다. 못지않게 나도 특유의 저음으로 감사의 뜻을 전했다. 수없이 상상했던 그 순간을 그렇듯 허무하게 끝내고만 것이다.
희망보다는 절망에, 승리보 보다는 패배에, 기쁨보다는 고통 속에 있는 삶은 축복받은 삶이다. 그것은 끝없는 도전을 요구하고 가능에로 열려있기 때문이다. 계속에서 불가능을 부숴가는 유희를 꿈꾸었다. 그것은 때로 추락의 아찔함과 공포감을 안겨 주었다. 그것은 또한 나의 의식의 언저리를 맴돌며 잠들려하는 나를 깨우기도 하였다. 지금 나는 막상 활자화되는 작품에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내가 꾸는 꿈이 헛되지 않을거라는 다소의 격려에 깊은 감사를 느낀다.
작품 속에 인물들을 창출해 내면서 지극히 이기적이었던 삶의 부분들을 돌이켜 보았다. 무심하게, 의식적으로 외면했던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에 애정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하루로 족한 이 기쁨을 이 세상에서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것은 진정 행복한 일이다.
◇약력
▲1963년 전남 보성 출생 ▲1984년 서울예전 연극과 수료 ▲1990년 서울예전 극작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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