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농산물 개방에서 보여준 문제점 점검(진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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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개방준비 자세는 “낙제점”/종합대책 없이 우왕좌왕/업계등 눈치보기에 시기마저 놓쳐
개방물결이 국내 시장전체에 넘실대고 있다.
특정산업·특정품목에 드리웠던 차단막이 벗겨지고 이미 개방된 곳은 내국인대우와 보다 용이한 「시장접근」을 요구하는 외압으로 규제의 끈이 풀리고 있다.
흔히 나라경제의 안방으로 비유되는 자본시장도 올해 증권산업개방,내년 시장개방이란 확정된 스케줄속에 열리게 되어있다.
공산품이야 이미 완전개방과 다름없는 상태고 농수축산물도 BOP조항(국제수지 적자를 이유로한 수입제한)졸업에 따라 오는 97년이면 원칙적으로 전품목의 수입을 허용토록 되어있다.
당장 올초에 92∼94년에 1단계로 풀 농산물을 대외적으로 공포해야하는 의무가 있다.
이제 개방은 상품이동뿐 아니라 자본이동에서도 거스르기 힘든 대세로 자리를 굳혔다.
금융서비스·지적소유권·운송·통신·건설 등 상정가능한 전 분야가 대상이다.
개방은 결국 「경쟁」을 의미한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무언가 나은 것이 있어야 한다.
선진국에서 시장개방을 그토록 밀어붙이는 것은 경쟁에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얘기다.
농산물이나 금융·통신등의 개방압력이 특히 거센것은 그분야에서 특히 경쟁력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개방은 그 자체로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국내시장에서 독과점의 폐해가 보여주듯 비경쟁체제는 소비자,나아가 나라의 경제발전에도 도움이 되지않는다.
문제는 개방을 맞는 자세에 있다.
우루과이라운드협상에서 한국등이 쌀등 일부 작물은 이른바 비교역적 품목으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억지」정도로 받아들여진 것은 개방은 「원칙」이기 때문이다.
개방에 대한 제한이 인정되는 것은 전반적인 경제발전의 정도가 낮은 국가라든가 특정산업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커 어느 정도 적응할 시간을 줄만하다고 느끼는 경우다.
우리의 경우 크게 두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우리의 발전정도가 「과대평가」라 할 정도로 높게 받아들여지고 있고 경제발전단계에서 추진축이 대외지향으로 맞춰짐에 따라 이젠 싫든 좋든 개방의 틀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구조로 정착됐다는 점이다.
따라서 대외개방에 대한 자세는 대단히 원론적이지만 외부로부터의 충격을 줄이면서 국내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으로 잡을 수 밖에 없다.
바로 이점이 적절히 이뤄지지않아 전면개방이 코앞에 닥친 요즘까지도 우왕자왕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개방의 최종단계인 자본시장개방에 대한 자세만 봐도 그렇다.
올해부터 허용된 증권산업개방은 대내개방과 대외개방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대내개방은 대외개방에 앞서 국내 증권산업의 전문화를 돕고 경쟁체질을 익히는 준비단계가 돼야했고,그렇다면 자본시장 자유화일정이 발표된 88년말이후 보다 서둘러 시행되었어야 옳다.
그러나 기존 업계의 이해 상충과 이런저런 눈치보기에 밀려 92년의 자본시장개방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한꺼번에 이뤄지다보니 이같은 준비단계로서의 효용성은 커녕 자칫 체질만 더 약화시키는 결과를 빚지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자본시장개방에 앞서 갖춰 두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은 금리 등 가격변수의 기능을 제대로 갖추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자본시장자유화 일정발표와 금리자유화조치가 동시에 이뤄진것은 당연한 것이었는데 그후 금리자유화는 계속 뒷걸음질만 쳐 결국 형해만 남은 상태다.
재무부는 올해 『금리 등 가격변수를 중심으로 금융자유화의 정도를 더욱 진전시키 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촉박한 자본시장개방일정을 생각하면 해도 벌써 해서 이제는 정착단계에 들어섰어야할 일이다. 그게 아니면 88년말의 일정발표는 애당초 섣부른 일이었다는 얘기다.
농산물시장개방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이해에 매달려 추곡수매·부채경감등 소득보상적인 단방요법에만 급급했지 정작 개방시대를 헤쳐갈 농수축산업의 재정비,농어촌사회의 구조조정 등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는 접근치도 못하고 있다.
이제는 개방을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고 개방을 하되 그에 앞서 준비자세를 어떻게 갖추느냐에 힘을 모아야 할 때다.<박태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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