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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커머스 도전, 유통 규제 철폐가 해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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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중국 커머스의 도전 속, 우리 유통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방어적 접근보다 소비자 중심의 혁신적 접근이 필요하다. 김지윤 기자

중국 커머스의 도전 속, 우리 유통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방어적 접근보다 소비자 중심의 혁신적 접근이 필요하다. 김지윤 기자

이동일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한국유통학회 회장·리셋 코리아 자문위원

이동일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한국유통학회 회장·리셋 코리아 자문위원

작년 하반기부터 두드러진 중국 커머스의 존재감은 우리 유통산업의 경쟁력에 대해 많은 화두를 남겼다. 우리 유통산업이 지난 20여 년간 누려왔던 자체 완결적 생태계가 얼마나 허상이었는지 드러났다. 이런 생태계는 우리 유통산업이 거저 얻은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내수시장을 두고 경쟁하여 유통과정을 혁신한 결과다. 우리 유통산업은 시장 내 유례없이 강한 경쟁압력을 만들어 내었고, 글로벌 유통기업도 이러한 경쟁압력에서는 견디기 힘들어 우리끼리 경쟁하는 구조를 만들어 냈다. 그 결과 세계적으로 강한 침투력을 갖는 아마존조차 한국시장에는 직접 진출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우회했다.

소비자 반발 부른 KC 인증 사태
유통의 본질은 고객의 선택 존중
대형마트 휴업제 등 규제 없애야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국제공급망의 재편, 국제금융시장의 고금리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중국발 국경 간 개인 거래의 존재감이 커졌다. 중국 커머스는 이런 불리한 상황을 무색하게 만드는 공급 조건과 물류시스템을 활용하는가 하면, 무엇보다 막강한 자금력을 통해 우리 시장을 파고들었다.

도전에 대한 응전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방어적 접근과 들어와도 의미가 없게 만드는 공격적 접근이다. 이 중 쉬운 것은 방어적 장벽을 치는 것이다. 지난 16일 정부가 발표한 국내 유통상품에 대한 우리 산업인증을 요구하는 방안이나, 개인통관 면세제도의 철회, 국내 유통상품에 대한 부가세 부과 같은 방법이 대표적인 방어적 장벽이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가인증통합마크(KC) 미인증 해외 직접구매와 관련한 정부의 정책이 혼선을 빚은 점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뉴시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가인증통합마크(KC) 미인증 해외 직접구매와 관련한 정부의 정책이 혼선을 빚은 점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뉴시스

장벽은 유통을 방해한다. 유통되는 상품의 다양성을 제약하고, 필연적으로 구매 가격을 높이게 된다. 우리 소비자와 제조산업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소비자에게 불편함을 주고 소비생활에 좌절감을 안기는 조치임은 부정할 수 없다. 소비생활에 제약을 주는 정책은 소비자가 스스로 그 제약을 감수할 필요성을 느낄 때, 또는 사회가 그 제약을 용인할 때 의미가 있다. 이번 KC 인증 사태는 한국 소비자가 이제 대의를 명분으로 한 소비생활 제약 정책에 대해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는 점에서 역사적 사건이라 할 만하다. 지금까지 한국 소비자는 대의와 명분을 앞세운 규제에 대해서는 순응하는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유통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공격적 접근은 어떤 것일까? 위험하고 품질이 조악하다면 싸게 팔아도 소용없고, 빨리 배송해도 소용없으며, 더 쉽게 구매할 수 있어도 의미가 없다. 결국 경쟁력의 관건은 소비자, 즉 고객의 선택이다. 유통의 본질은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 줄 상품을 고객이 원하는 방식으로 제공해 주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업태와 방법을 막론하고 소매 영역 전체에서 혁신적 접근을 시도하는 기업 활동이 보장되어야 한다.

서초구는 지난 1월 28일부터 자치구 최초로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을 시행했다. 서초구의 한 대형마트는 매주 일요일에 정상 영업하고 2·4주차 수요일에 휴무한다. 사진은 해당 대형마트에 '일요일 정상영업' 안내문이 게시돼 있는 모습. 뉴스1

서초구는 지난 1월 28일부터 자치구 최초로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을 시행했다. 서초구의 한 대형마트는 매주 일요일에 정상 영업하고 2·4주차 수요일에 휴무한다. 사진은 해당 대형마트에 '일요일 정상영업' 안내문이 게시돼 있는 모습. 뉴스1

지역점과 거점 점포,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바일, 서비스 구성 등에서 단순한 상품 진열을 넘어서는 소비자 경험, 콘텐트의 융합 및 체계적 구성 등이 자유롭게 시도돼야 유통산업의 혁신적 경쟁력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대형마트라서 영업일 및 영업시간, 상품 구색, 온라인 유통 역량 활용이 제약된다. 편의점이라서 출점 제약이 생기고, 쇼핑몰이어서 입점 브랜드의 제약이 생긴다. 이런 상황이 되면 소매기업은 혁신적 경쟁력 구축 방안에 대해 자기검열을 시작하게 된다. 이런 제약이 온라인 소매 플랫폼 영역에서도 논의되고 있다고 하니 우려가 더 커진다.

우리만의 내수시장과 유통산업을 고민한다면 다양성과 공정성이라는 명분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글로벌 경쟁 상황에서 우리만의 명분은 고객으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고 유통산업 경쟁력에도 기여하지 못한다. 애초에 유통산업에서 다양성과 공정성을 앞세운 이유도 소비자에게 선택의 기회를 보장해 유통산업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시도였다.

소비자 선택에 대한 부응은 유통산업의 절대적 기준이다. 이런 기준 위에서 소비자 선택을 고도화하기 위해 시장을 통한 진화적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유통산업 경쟁력 측면에서 가장 바람직하다. 이런 방법이야말로 가장 공격적인 경쟁력 강화 방안이다. 공격이 최상의 방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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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일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한국유통학회 회장·리셋 코리아 자문위원